[NLL 대화록]_03_작전계획 5029를 막은 노무현 대통령

 

-미 대화와 대결 사이에 끼어 있는 대한민국이 사는 최선의 길은 북한과 미국 사이에서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이는것입니다. 북한과 미국이 으르렁거리며 싸울 때는 아이고 이거 왜들 이러십니까?” 하면서 차분하게 분위기를 가라앉혀야 하고요, 서로 거래가 잘 될 때는 바로 그겁니다. 우리도 돕겠습니다.” 하는 것이죠.

 

노무현 대통령은 어려운 가운데서도 그런 역할을 잘 하셨습니다. 그 전까지는 그저 외부에 나타난 몇 가지 흔적만 보고 판단했는데 대화록을 읽어 보니 여실히 나타나더군요. 그 부분을 읽을 때 특히 전율이 흘렀습니다.

 

대화 내용을 인용하면서 음미해 보겠습니다. 따옴표 안의 파란색 글자는 회의록에 나와 있는 내용을 따온 것입니다.

 

흥정을 붙여라! - 미국과 관계 개선 유도

 

나는 김 위원장께서 북미 관계 개선을 위한 문만 열어놓는다면 미국이 이에 상응한 관계개선 조치를 속도를 내서 취하도록 계속 재촉할 것입니다.”

 

김정일 위원장 앞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이렇게 단도직입적으로 말했습니다. 미국을 믿지 못하고 주저하는 북한, 북한에 대한 관계 개선을 꺼리는 미국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하고자 한 것입니다. 가장 현명한 길이죠.

 

이러한 설득은 말로만 해서 될 일이 아닙니다. 말로는 무엇인들 못 하겠습니까? 구체적인 행위가 있어야 믿음을 줄 수 있지요. 노무현 대통령은 말만 앞세운 분이 아닙니다. 다음 언급을 보시면 일치된 언행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국내외에서 속도 조절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있었지만 우리 정부는 그 점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거부하고 속도를 높여서 신뢰 구축을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그동안 해외를 다니면서 50회 넘는 정상회담을 했습니다만 그동안 외국 정상들의 북측에 대한 얘기가 나왔을 때, 나는 북측의 대변인 노릇 또는 변호인 노릇을 했고 때로는 얼굴을 붉혔던 일도 있습니다.

 

하나하나의 행동이 보이지 않는 과정에서 언젠가는 김 위원장과 대화를 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신뢰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북측에서 볼 때는 많은 한계도 보였을 것입니다. 핵 문제가 불거졌고, 정치적 화해와 군사적 신뢰 구축 분야에서는 상대적으로 진전이 아주 미흡했습니다.”

 

노무현의 신뢰 구축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말로만 신뢰를 부르짖는 것이 아니라 신뢰 구축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행동이 따르는 신뢰입니다.

 

그러면서 은근히 북측을 부추기기도 하고 책망하기도 합니다. ‘한계도 보였을 것이라는 말과 핵 문제가 불거졌고’ ‘진전이 아주 미흡했습니다.’ 이렇게 순차적으로 나열하면서 진전이 잘 안 되는 현상황을 되돌아 보게끔 합니다. 그 와중에 핵문제를 끼워 넣으니, 듣고 있는 김위원장으로서도 나름 이해와 생각이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 민족끼리를 강조하는 북측에 대하여 대통령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사실을 세심하게 이해시키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끼리 아무리 하고 싶어도 그렇게 할 수 없다는 현실들이... 우리 소위 남측의 경제가 확 주름이 잡힌다든지 기업들이 곤란을 겪는 일들을 정부가 결정해야 된다는 것이.. 되지도 않으면서 고립을 자초하는... 고립을 자초하는 자주는.. 이것은 할 수 없는 것이다. 세계 역사를 봐도 활발한 교역에 앞장선 국가들이 세계 패권을 가지고 왔던 것입니다. 우리는 세계 패권을 꿈꿀 수는 없겠지만, 한반도가 7천만 경제권을 가지고, 그래서 동북아시아에 실제 중심을 잡는 이런 위치에 가자면 경제에 있어서 앞서가야 되고 경제를 유지하자면 교역권 활발하게 안 할 수 없는 이런 애로가 있다는 점을 이해를 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미국의 역할을 무시할 수 없는 현상황을 세계사를 들어 설명하고 있지요. 한반도가 경제를 유지하려면 교역에 힘쓸 수밖에 없음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어서 북측을 설득합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그렇지만은 이와 같은 세계 경제의 현실속에 북측도 함께 발을 들여야... 시장에는 발을 디뎌야지 안디디고 어떻게 갈 수 있겠느냐... 그런 해명을 좀 말씀드리고요.. 그래서 비위를 살피고 눈치를 보는 이유가 사대주의 정신보다는 먹고사는 현실 때문에 그렇게 되고 있다는 점을 잘 이해를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태도에 믿음이 갔던지 김정일 위원장은 부시 대통령을 설득하여 북-미 사이에 종전선언을 이끌어 내는 데 도움을 주면 좋겠다는 의사를 표시합니다. 이에 대하여 노무현 대통령은 다음과 같이 대답합니다.

 

부시 대통령 종전선언 이 문제에 있어서 정말 한번 성사시켜 보라고 하셨는데...이 부분 좀 시간을 두고 위원장님하고 뭐 하나 말씀을 나누고 갔으면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이제 무조건 가가지고 부시대통령한테 하자.. 이것은 아니니까 남북 간에 여기까지 갔으니까, 이제 또 이걸 부시대통령이 그렇게 말했으니까, 그걸 디디고 와서 내가 위원장님께 우리 이런 거 한번 합시다 말씀드릴 수 있었듯이...”

 

노무현 대통령은 무조건 그렇게 하겠다로 답하지 않고 북측에게도 뭔가를 요구합니다. 무조건 하자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먼저 남북 간에 뭔가를 이루어 보자 하는 것이죠. 그러자 김정일 위원장이 다음과 같이 말끝을 흐립니다. 이 부분에서 슬며시 웃음이 나더군요. 참고로 당시 부시 대통령은 임기 말이었죠.

 

당면하게 이제 부시대통령도 시간없지요 뭐 이제...”

 

다음 대화에서도 역시 대통령의 노련한 대화술이 발휘되고 있습니다. 우선 함께 음미해 보겠습니다.

 

아까 김계관 부상이 그랬습니다. 적대시정책 철회하고, 비핵화는 전 조선반도에 한다. 이거 좋습니다. 이미 합의된 거니까. 지금은 6자회담 주제에 남측 문제가 안 들어있으니까 그렇지. 이것은 남북간에도 충분히 합의하고, 이미 합의가 있는 거니까 지켜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평화적 이용권, 적극적으로 찬성합니다. 말하자면 미국이 안 줄려고 하면 6자회담은 성공할 수 없는 것입니다. 다만 시간적으로 신뢰를 확보해가는 과정 아니겠습니까.

 

신뢰를 누구를 기준으로 하느냐, 국제사회에서 사실 그렇습니다. BDA문제는 미국이 잘못한 것인데, 북측을 보고 손가락질하고, 북측보고 풀어라 하고, 부당하다는 거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문제를 실질적으로 풀어나가기 위해서는 국제사회에서 지지를 확보해야 됩니다.”

 

위 발언에서 다음 세 가지 사항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1) -미 사이에서 남한의 입지를 세워 나가려는 노력입니다. 적대시정책 철회와 비핵화는 북한과 미국 사이에 진행되는 이야기입니다. 그 사이에 남측이 슬며시 끼어드는 모습을 볼 수 있지요. ‘남북간에도 충분히 합의하고’ ‘적극적으로 찬성합니다.’ 라는 언급이 그 일환입니다. 이렇게 입지를 스스로 세워 나가야 남한이 소외되지 않고 나아가 주도권을 쥘 수도 있습니다.

 

지난 시절 김영삼 대통령이 김일성 주석 조문을 불허하고 남북관계가 냉랭해졌을 때 우리에게 돌아온 결과와 비교해 보면 쉽게 이해될 것입니다. 북한과 미국이 합의하고 남한은 소외된 채 경수로 건설 비용만 지불해야 했던 적이 있지요. 32억인가 됩니다.

 

2) 국제 사회에 신뢰를 줄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신뢰를 누구를 기준으로 하느냐... 국제사회에서 지지를 확보해야 됩니다.’ 하고 설득하는 것이죠.

 

3) 북측 입장을 이해해 줍니다. 설득은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해 줄 때 효과가 있습니다. 무조건 자기 주장만 하는 것이 설득은 아니죠. ‘BDA문제는 미국이 잘못한 것인데, 북측을 보고 손가락질하고, 북측보고 풀어라 하고, 부당하다는 거 다 알고 있습니다.’ 이 말을 듣는 김위원장은 마음이 절로 움직였을 것입니다. ‘, 이 사람은 우리 고충을 알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겠죠.

 

이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BDA, 즉 방코델타아시아은행 문제에 대한 개괄적인 이해가 필요합니다. 북한과 미국이 서로 적대관계 청산하고 평화적으로 잘 지내 보자고 2007년도에 또 한 번 결의한 적이 있는데 그것이 2.13 합의입니다. 그런데 미국은 곧바로 BDA 북한 계좌를 자금세탁 혐의로 동결합니다. 세계 금융 시스템에서 북한을 고립시키자는 것이죠. 잘해 보자고 약속해 놓고 곧바로 그런 조치를 하니까 상황이 대략 난감이 된 것이죠.

 

이와 같은 사정을 잘 아는 노무현 대통령은 미국의 잘못을 꼬집으면서 부당하다는 점에 공감해 줍니다. 그러니 김위원장에게는 노무현 대통령이 진심으로 자기들을 생각하고 민족의 장래를 생각하는 인물로 비춰졌을 것입니다. 한마디로 신뢰가 더욱 굳어졌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기조를 유지하면서 대통령은 북측을 계속 설득합니다. 김정일 위원장도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죠.

 

대통령 : 우리가 선진강국이 되자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하고 적대관계, 관계정상화 풀어야 되고요. 일본하고도 아니꼬와도 문제를 풀고 가야 합니다. 남북이 말하자면 완전한 협력관계에 들어서고 북측이 국제관계에 들어서고 나면 쫓아내지 못하거든요. 지금은 세게 하면 고립이 되지만, 자리를 잡고 난 뒤에 세게 하면 자주가 되거든요. 자주가 고립이 아니라 진짜 자주가 될 수 있도록 그렇게...

 

김정일 : 옳습니다. 노 대통령님의 견해를 충분히 알았습니다.”

 

싸움을 말려라 작계 5029 무력화

 

흥정은 어떻게든 붙이려 했던 반면 싸움은 어떻게든 말리려 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미국의 작전계획 5029를 무력화한 사실이 언급됐군요. 이 부분을 읽으면서 저는 속으로 , 이렇게까지 하셨구나!’ 하는 점에서 전율을 느꼈습니다.

 

우리가 전략적 유연성.. 전략적 유연성 문제에 있어서 우리가 현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지만.. 동북아시아에서 군대를 움직일 때에는 우리 정부의 승인을 반드시 받아야 된다.. 합의했지 않았습니까... 작계 5029라는 것을 미측이 만들어 가지고 우리에게 가는데... 그거 지금 못한다.. 이렇게 해서 없애버리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개념계획이란 수준으로 타협을 해가지고 있는데 이제 그거 없어진 겁니다. 그렇게 없어지고.. 우리는 전쟁사실 자체를.. 전쟁상황 자체를 동의하지 않기 때문에... 그건 뭐 갈 수 없습니다.”

 

작전계획 5029는 북한 급변사태를 가정한 한미 군 당국의 대비계획을 말합니다. 미국은 지난 2005년 초 북한 급변사태 발생 시 군사 대응 방안을 작전계획으로 수립하려 했지만 대한민국 주권을 침해할 요소가 있다는 우리 정부의 반대로 중단됐고 개념계획으로 머물러 있습니다. 개념계획은 북한의 급변사태 유형은 상정하지만 군사적 대응 시나리오는 들어가 있지 않은 상태죠.

 

작전계획 5029가 왜 위험한지는 이라크, 리비아, 시리아 등의 예를 보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급변사태를 그냥 대비하는 것이 아니라 급변사태를 일부러 유도 내지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는 게 위험천만한 일이죠. 미국은 지금도 시리아 등을 대상으로 군사적으로 지원 또는 개입하고 있지요.

 

노무현 대통령은 이를 알고 계셨기에 미국과 일정 부분 마찰을 무릎쓰고 이를 막아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미국 앞에서 우리 의지대로만 할 수는 없는 것이니 이라크 파병 등 일정 부분 미국에도 협조를 해야 했던 것이고요. 진보주의자가 이러한 내막을 모르면 노무현 대통령을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대통령의 눈으로 보면 세계 속의 한민족 처지가 한눈에 보일 것입니다. 평화와 번영의 가장 큰 걸림돌인 분단을 극복하지 않고서는 미래가 없다는 것도 잘 알게 될 것입니다. 입지의 폭이 좁은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민족의 장래를 위하여 북-미 사이에서 흥정은 붙이고 싸움은 말리려고그토록 노력하신 노무현 대통령의 의지를 생각하면 감사하기도 하고, 애처롭기도 하고, 그를 이해하기는커녕 음해하려는 세력에 분노하기도 합니다.

 

 

Posted by PoetT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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