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평화협정 어디까지 왔나
도널드 트럼프와 미국의 출구전략
지창영 / 시인, 번역가
한국 정부에 평화협정의 운을 뗀 미국
지난 4월까지만 해도 필자는 북-미 평화협정 소식이 5월까지는 공식적으로 발표될 것으로 내다봤다. 실은 구체적인 날짜까지 내심 예측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5월 6일, 즉 조선노동당 제7차 대회가 열리는 날이었다. 필자가 그렇게 내다본 것은 북-미 사이에 평화협정은 이미 합의된 것으로서 공식적인 발표만 남은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쿠바와 미국 사이에 국교 정상화 추진이 선언(2014년 12월)되고, 이란과 미국 사이에 핵 협상 타결이 발표(2015년 4월)되었듯이 북-미 사이에도 평화협정 소식이 그렇게 전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5월 6일 열린 제7차 당대회는 1980년 6차 대회 이후 36년 만에 열리는 당대회로서 북-미 평화협정이라는 세기의 대사건을 공식 발표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날짜일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그러나 당대회가 마감하는 9일까지 평양에서도 워싱턴에서도 평화협정과 관련해서는 아무런 발표가 없었다.
그렇다면 평화협정 소식을 기대한 것은 빗나간 예측이었을까? 반은 빗나갔고 반은 그렇지 않다고 본다. 적어도 평화협정이 공식 발표되리라는 예측은 틀렸다. 그러나 평화협정 소식이 수면 위로 한층 더 드러난 것은 맞았다.
관련 기사는 5월 7일자 중앙일보에 실렸다. 미국의 국가정보국장 제임스 클래퍼가 4일 비공개로 한국을 방문하여 한민구 국방부 장관과 국가정보원 인사들을 만난 뒤 5일 출국했다는 내용이었다. 이 기간에 나눈 대화 속에 바로 평화협정과 관련된 내용이 있었다. 익명의 당국자가 밝힌 내용에 따르면 “클래퍼 국장과의 대화 내용 중에는 미국이 북한과 평화협정과 관련한 논의를 할 경우 한국이 어느 정도까지 양보할 수 있느냐는 취지의 문의도 있었다”고 한다.
비공개 방한과 당국자의 공개
위 기사 내용에서 눈여겨봐야 할 두 가지 점이 있다. 그 하나는 클래퍼 국장이 언급한 내용이다. 그의 말을 음미해 보면 미국은 분명히 북-미 평화협정을 준비하고 있음을 삼척동자도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클래퍼는 평화협정 체결 시 한국이 양보해야 할 내용이 있음도 언급했다. 언론에 이 정도로 밝혀졌다면 논의는 상당히 구체적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주목해야 할 두 번째 점은 비공개로 방한한 클래퍼의 행보를 당국자가 언론에 흘렸다는 점이다. 기사 내용에 따르면 ‘익명을 원한 외교안보 부처 고위 당국자’가 이 사실을 밝혔고, ‘또 다른 당국자도’ 관련 사실을 언급했다. 복수의 당국자가 관련 내용을 언론에 흘렸고 그 중 한 사람은 고위 당국자라 했다. 이는 일부러 유포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클래퍼와 같이 정보 계통에 있는 고위 인사는 방문 상대국을 비밀리에 들고 나는 것이 상례다. 그의 행보가 어쩌다가 언론의 추적에 노출된 것도 아니고 관련 당국자의 입을 통하여 밝혀진 것은 고의적인 발표라고 봐야 한다. 더욱이 당국자들은 그 내용이 평화협정과 관련돼 있다고 밝혔다. 누가 봐도 일부러 밝힌 것임을 알 수 있다.
충격 완화를 위한 연착륙 사전 작업
그렇다면 클래퍼의 방한 사실과 평화협정 논의 내용을 일부러 언론에 흘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보수층의 충격 완화용이라고 볼 수 있다. 필자가 보기에 미국은 일정에 쫒겨 평화협정의 운이나마 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쿠바와 관계개선을 발표한 것처럼 북-미 평화협정도 전격적으로 발표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러기에는 변화 상황이 가히 충격적일 것이므로 속도를 조절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북-미 사이에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보수층에서는 당장 난리가 날 것이다. 주한 미군 철수를 염려하면서 마치 나라가 금방 망할 것처럼 들썩이게 될 것이다. 전쟁을 치른 세대는 그 트라우마가 극에 달하여 자칫 사회가 혼란에 빠져들고 최악의 경우 미국에 배신감을 느낀 나머지 독자적으로 북에 대하여 군사적 도발을 감행할 수도 있다.
남북 간의 군사적 긴장 내지 도발은 미국이 가장 우려하는 사태다. 전쟁으로 비화되는 경우 미국 본토가 위험해지기 때문이다. 북이 연일 미사일 발사 시험을 강행하는 것이 대미 무력시위라는 것쯤은 이제 대개가 아는 사실이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본토에 불똥이 튀지 않게 해야 한다.
이러한 미국의 처지를 안다면 제임스 클래퍼가 한국을 다녀가면서 그 사실을 공개하도록 한 이유가 무엇인지 한층 명확해진다. 한편으로는 북에 대한 메시지요, 다른 한편으로는 남측에 대한 메시지다. 미국이 북과 평화협정을 약속했다면 이 약속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북이 알도록 할 필요가 있다. 또한 남측에는 평화협정이 가까워 오고 있으니 준비를 하라는 신호를 줄 필요가 있다. 이 과제를 동시에 수행한 것이 클래퍼의 방한과 그에 따른 언론 플레이다.
트럼프는 과연 미국의 출구인가
북과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미국의 최대 과제는 한마디로 체면을 유지하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북의 무력에 굴복하여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미군도 철수한다는 인상을 최대한 줄여야 한다. 그래서 미국에게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 시점에서 주목되는 인사가 바로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트럼프는 주한 미군 철수도 불사하겠다는 언급을 공공연히 하고 있다. 그의 발언 속에는 미국 엘리트 집단의 속내가 깃들어 있는 것이 아닐까. 평화협정을 체결하면 어차피 미군은 한반도에서 철수하게 될 것이다. 트럼프가 미리 떠들어 놓으면 미군을 빼 간다 해도 그것은 미국의 의지에 의한 철수라고 세계 앞에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추측이 맞다면 북-미 평화협정이 공식적으로 세계에 발표되는 시점은 미국의 대선 시기와 맞물릴 것이다. 새 대통령의 임기는 2017년 1월 말경 시작될 것이므로 빠르면 2017년 상반기에는 획기적인 변화가 공식화될 것으로 보인다.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오바마는 어떻게든 현상 유지를 하고 대통령이 바뀐 이후 북과의 관계도 전환한다면 미국으로서는 체면 구기지 않고 한반도에서 발을 뺄 수 있을 것이다.
관련 글(1) : 점점 명확해지는 북-미 평화협정의 징후
http://incheonin.com/2014/news/news_view.php?sq=31686&m_no=2&sec=2
관련 글(2) : 대북 제재 결의안 2270호에 숨겨진 비밀
http://incheonin.com/2014/news/news_view.php?sq=31777&m_no=2&sec=2
관련 글(3) : 미국 합참의장의 고백(“한반도 전쟁의 주도권을 북코리아가 잡을 수 있다.”)
http://incheonin.com/2014/news/news_view.php?sq=32101&m_no=2&sec=2
(2016. 6.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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