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포탄 발사와 장애인아시안게임 선수단 파견


지난 10월 10일, 휴전선에서 남북한 사이에 총격 사건이 있었고 민통선 내부와 연천군 일대에 고사총 포탄이 떨어지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로써 한반도는 최근 바다와 섬에 이어 내륙에서도 총포탄 공방이 벌어진 것이다.
 


바다에서는 일찍이 NLL을 중심으로 수 차례 충돌과 수습을 거듭해 왔지만 노무현 대통령 시절 남북 정상 간의 대화를 통한 서해평화협력지대 구상으로 어느 정도 해결의 가닥을 잡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이후 해결점은 실종되고 오히려 충돌이 격화되어 섬(연평도)에 대한 포격으로 이어졌고 박근혜 정부에 이르러 내륙(연천군)에 대한 공격으로 이어져 심각한 우려를 낳고 있다.
 
연평도 포격과 삐라 총격의 닮은 점
 
온 나라를 충격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2010년 11월 23일의 연평도 포격 사건은 충분히 예방할 수 있는 참사였다. 금년 10월 10일 연천 지역에 인민군의 총포탄이 날아든 것도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사태였다. 두 사건의 공통점으로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 북측이 싫어하는 일을 남측에서 강행했고 북측의 거듭된 경고를 남측이 무시했다는 사실이다.
 
2010년 11월 23일 연평도에 포탄이 날아든 것은 오후 2시 34분께부터 약 1시간 가량이었다. 남측은 호국훈련의 일환으로 NLL(서해 북방한계선) 인근에서 사격훈련을 하고 있었다. 북측은 민감한 지역에서의 사격훈련은 참화를 부를 수 있다고 지속적으로 경고해 왔고, 당일 오전 8시 20분경에는 남측에 전통문을 보내 사격훈련을 중지할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이는 무시되었고 결국 포격에 의해 군인 2명과 민간인 2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일어났다.
 
2014년 10월 10일 연천군에 날아든 고사총 포탄은 비록 인명 피해는 입히지 않았으나 언제든 충돌의 범위가 커지고 피해가 깊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걱정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빌미가 된 것은 남측에서 북을 향하여 날려 보내는 삐라였다. 역시 북의 거듭된 경고를 무시한 처사였다.
 
이유야 어찌 됐든 포격이나 총격이 정당화되거나 미화될 수는 없다.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이런 불행한 일들이 과연 불가피한 것이었느냐 하는 점을 따져 봐야 한다. 거두절미하고 김대중, 노무현 정권 때 같았으면 이토록 비극적인 일이 발생했겠느냐 하는 것을 생각하면 답은 자명해진다.
 
모조리 풀려 버린 겹겹의 안전장치들
 
누구나 아는 것처럼 군사 무기에는 안전장치가 있다. 안전장치를 풀어야 총알이 발사되든 폭탄이 터지든 한다. 남과 북 사이에는 자칫하면 격발되거나 폭발할 수 있는 긴장 지대가 존재한다. 폭발의 위험성을 제거하기 위해 그간 겹겹의 안전장치들이 마련되었다. 몇 가지만 짚어 보자.
 
(1) 김대중 노무현 정부 10년간 준비하고 실행된 남북 간의 화해협력정책이 있다. 이를 유지했다면 갈등은 격화되지 않았을 것이다. (2) 남북 정상 간에 합의된 선언들이 있다. 7·4 남북공동성명, 6·15 선언, 10·4 선언 등을 준수했다면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3) NLL과 같은 민감한 지대에서 무리하게 군사훈련을 하지 않았다면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군사훈련은 필요하다. 그러나 굳이 상대를 자극하면서까지 민감한 지역에서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4) 전쟁을 우려하는 시민단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더라면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5) 거듭되는 북의 경고를 무시하지 않았더라면 귀중한 생명이 희생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위와 같은 장치들 중 하나만이라도 제대로 작동했다면 불행한 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나 여러 겹의 안전장치들은 모조리 풀리고 결국 휴전 이후 최대의 비극인 연평도 포격이 발생하고 급기야 대북 삐라를 겨냥한 총포탄이 남측 내륙에 떨어지기에 이르렀다. 안전장치가 한두 가지가 아닌데도 모두 풀렸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라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
 
남측 대표단의 표정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
 
총격전이 있기 6일 전인 지난 10월 4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그 날 인천시청 부근에 있는 ‘영빈관’이란 음식점에서 남북 대표단의 오찬회담이 있었다. 아시안게임 폐막식에 참석하기 위해 방남한 북측 고위급 일행과 함께한 자리였다. 수면 위로 알려진 화기애애한 분위기와는 달리 물밑에서는 심상치 않은 기류가 흐르고 있었음을 파악할 수 있다.
 
TV조선의 보도에 따르면 회담 직후 북측 대표단이 자리를 뜨고 남측 대표단만 잠시 식당에 남았는데 ‘심각한 분위기였다’고 한다.종업원들을 내보내고 비공개로 진행된 회담이 세 차례였고 그 시간은 약 15분이었다고 하는데, 이 시간 동안 오간 이야기는 물밑에서 벌어지는 상황으로서 아직 세상에 알려지지 않고 있다. 다만 분위기가 싸늘했고 남측 대표단의 표정이 굳어졌다는 사실만 영빈관 관계자를 통해 전해질 뿐이다.(관련기사 : [남북 오찬회담서 직원에게 3차례 모두 "나가라"]) 
 
북측 대표단이 남측을 전격 방문하여 촉구한 것이 무엇일까 하는 내용은 지난 4월 6일 <인천in>에 게시된 글 [北 최고위급 3인의 전격 방문이 가져올 중대 변화]에서 밝혔으니 자세히 거론하지 않는다. 결론만 제시하자면 북측의 주장은 6·15, 10·4 선언의 이행과 밀접하게 연결될 수밖에 없을 것이며 이는 5·24 조치의 해제와도 직결된다. 북측은 기한을 못박았을 가능성이 크다. 나아가 북은 대화냐 전쟁이냐의 기로에서 남측의 선택을 촉구했을 것이다. 북이 미국과 대화하거나 대결할 때 늘 하던 방식이다.
 
북측의 제안에 남측 대표단이 심각해졌다는 것은 북측의 요구를 선뜻 수용하기 곤란한 입장이라는 것을 대변한다. 아니나 다를까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5·24 조치의 해제 여론을 잠재우는 발언을 하고 나섰다. 야당은 물론 여당 내에서도 5·24 조치 해제가 거론되고 새누리당 최고위원 김태호까지도 이에 가세하는 분위기에서 당 대표가 이를 저지하고 나선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대북 삐라가 북녘을 향해 솟아올랐고 북은 거듭된 경고를 실행에 옮겨 이를 겨냥한 사격을 감행했다.
 
명백히 드러나는 북측의 메시지
 
한반도는 안전장치가 풀려 있고 언제든 방아쇠만 당기면 폭발할 수 있는 분위기다. 이러한 상태가 지속된다면 그 끝은 전쟁이라는 것쯤은 삼척동자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뇌관이 제대로 폭발한다면 한반도 전체가 연평도와 같은 불바다가 될 수 있다.
 
남측이 어떤 길을 선택하든 북은 대응할 준비가 돼 있는 듯하다. 늘 그랬듯이 전쟁이면 전쟁으로, 대화면 대화로…. 남측이 대화에 응한다면 남북은 김대중 노무현 당시처럼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변화 발전할 것이다. 그러나 그 반대로 대북 삐라든 인권문제든 대결의 빌미를 계속 제공한다면 그 모든 것들이 그대로 북측에게는 전쟁의 명분이 된다. 명분이 축적되고 임계점에 도달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누구나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대화냐 전쟁이냐 하는 갈림길에서 선택할 수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을 것이다.
 
북의 행보를 유심히 보자. 유엔에서 북한 인권문제를 거론한 박근혜 대통령을 맹렬히 비난하면서도 인천 아시안게임에 선수들을 출전시켰고 폐막식 날 고위급 인사들이 깜짝 방문했다. 삐라를 겨냥해 고사총을 쏘면서도 2014 인천 장애인아시안게임에 또 다시 선수들을 출전시킨다. 북측 선수들은 11일 이미 입국했다. 한켠에서는 마찰을 빚으면서도 평화 교류의 몸짓을 멈추지 않는 북의 태도를 주목해야 한다. 북의 메시지는 명백하다. 대화와 전쟁 모두 준비되어 있으니 선택하라!

(지창영)

Posted by PoetT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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