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을 연재하기까지 통찰력을 주신 분들이 있습니다. 제가 마음으로 신세를 지고 있죠. 잘 되면 그 분들 덕이고요, 잘못 되면 모두 제 탓입니다. 좋은 날이 오면 그 분들이 누구인지 밝히겠습니다.)

 

 


일촉즉발

 


태국에 있는 타이거 박에게서 급보가 날아들었다. 그가 보낸 전자우편은 누가 보아도 안부 편지에 불과하다. 그러나 우리끼리 정해 놓은 암호가 있어 그것을 풀면 전혀 다른 내용으로 읽을 수 있다. 진짜 메시지는 그 안에 다 들어 있다. 전자로 오가는 내용은 누군가 마음만 먹으면 훔쳐내서 그 내용을 들킬 수 있기에 부득이 그런 조치를 취한 면도 있지만 반은 그저 장난삼아 그렇게 하는 것이다. 타이거 박의 제안으로 시작된 놀이였다. 보안 반 재미 반으로 하던 일인데 점점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특히 오늘 같은 경우 그 효과를 제대로 발휘하고 있다.


‘일촉즉발, S_1_d7.’ 암호를 푼 결과 핵심 메시지는 이렇게 압축되어 나타났다. 심장이 두근거리는 내용이 아닐 수 없으나 이 소설에서는 아직 그 내용을 밝힐 수 없다. 다만 오늘이 2011년 11월 30일이라는 것만 기록해 두기로 한다. 이 암호의 내용이 제대로 맞아떨어진다는 보장도 실은 없다. 다만 모르는 척 지나칠 일은 결코 아니다. 더구나 초미의 관심사인 세계대전에 관한 일이니 말이다.


세계대전이 정말 임박한 것일까? 한 가지 염두에 두어야 할 점은 정보의 원천이 하나라는 것이다. 정말 신뢰할 수 있으려면 적어도 세 군데는 돼야 한다. 즉 암호에서 'S_3' 정도는 돼야 신빙성을 논할 수 있다. 여기서 S라는 것은 그가 전하는 메시지의 소스를 뜻하고 그 뒤에 나오는 숫자 1은 소스, 즉 정보의 원천이 하나라는 의미다. 만일 여러 곳에서 동일한 정보를 얻었다면 그 수만큼 숫자가 커진다. 그러나 비록 S_1이라 해도 그저 간과할 수만은 없다. 만약 그것이 정확한 정보로서 그대로 맞아떨어진다면 신뢰도는 100%이기 때문이다.


타이거 박은 신중한 사람이다. 그가 이런 암호를 전달했을 때는 전혀 간과할 수 없는 정황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역시 3차 대전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나름대로 정보를 수집하고 국제정세를 탐색하고 있는 사람이다. 만난 적은 없지만 오래 사귄 것 이상으로 친근하게 느껴지는 사이다. 아마 관심사가 같고 서로 도움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나보다 더 오래 전부터 이 분야에 관심과 정력을 쏟고 있었다.


타이거 박에게서 정보를 전해 들을 때마다 속으로 놀라곤 한다. 정확성과 신속함에서 오는 느낌이다. 그를 생각하면 으레 배석달이 떠오른다. 배석달이 선문답처럼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킨다면 타이거 박은 땅 속을 파서 뭔가를 캐내 보여 주는 듯하다. 그만큼 구체적인 정보를 치밀하게 분석하여 제시해 준다. 한 번은 타이거 박에게 배석달을 아느냐고 물으려다가 그만두었다. 웬지 유치하다는 생각도 들었고 대답을 듣는 것보다는 그저 짐작으로 그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사실을 알게 될 테니까, 아니 모르면 또 어떤가.


타이거 박 말고도 이래저래 알게 된 사람들이 몇 있다. 우리는 서로 WH라는 약자로 통했다. 이것은 내 제안으로서 역시 장난기가 섞인 발상이었다. WH는 직접적으로는 War-Hunter의 줄임말로 ‘전쟁의 징후를 포착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나 그 의미는 확장되어 WH 의문사를 모두 포함하게 되었다. 즉 전쟁과 관련하여 누가(Who), 언제(When), 어디서(Where), 무엇을(What), 왜(Why) 일으키게 되느냐 하는 문제를 다룬다는 의미다.


우리가 지금까지 탐구하여 내린 결론은 이렇다. 먼저 누가(Who)의 문제다. 전쟁의 주체는 누구냐 하는 문젠데 결론적으로 미국과 북한이 주축이고 나머지 나라들이 부수적으로 참여하게 된다. 미국은 영국, 프랑스, 이스라엘 등 전통적인 친미 국가들이 뒷받침을 하게 된다. 북한을 뒷받침하는 나라는 중국, 러시아, 이란, 시리아 등이다.


언제(Where)? 2011년 말에서 2012년 초반 사이다. WH 회원 중 한 명은 일찍이 2008년을 점찍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것은 사실상 빚나가고 말았다. 전쟁 없이 2008년을 지나쳤으니 말이다. 그러나 당시 정황을 아는 사람들은 그의 예측이 전혀 빚나간 것만은 아니라고 한다. 그 당시에도 일촉즉발의 상황으로서 전쟁 일보 직전까지 갔었다는 사실을 나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어쨌건 이제 다시 그 시기가 바로 코앞에 닥쳐 온 것이다.


우리가 분석하기에 2012년 강성대국 진입을 공언한 북조선과 미국은 더 이상 결전을 미룰 수 없는 상황이다. 아니면 통 큰 평화협정으로 귀결될 수도 있으나 지금으로서는 비관적이다.


어디서(Where)? 전쟁이 터진다면 그 장소는 크게 아시아와 중동이다. 아시아에서는 한반도와 일본이 그 핵심 지역이 될 것이다. 주로 미군 기지가 불타오를 것이다. 연평도 포격은 그 샘플이라고 보면 된다. 중동에서는 미국의 아바타 이스라엘과 북조선의 아바타 이란이 맞붙으면서 전화에 휩싸이게 된다.


무엇을(What)? 무엇이라면 당연히 전쟁인데 이것은 일찍이 듣도 보도 못한 전쟁이 될 것이다. 아직 공개되지 않은 첨단 무기들이 총동원되어 속전속결로 끝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예상을 완전히 뒤엎는 결과를 보여 줄 것이다. 당연히 이길 것으로 생각되던 편이 참패로 끝나는 경이로운 결과로 귀결될 것이라는 말이다.


왜(Why)? 전쟁이 왜 불가피하냐? 미국의 패권전략과 북조선의 생존전략이 충돌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전세계를 자기 손아귀에 넣고 흔들고자 오랜 세월 골몰해 왔다. 미국은 그것을 위하여 때로는 전쟁도 불사했고 남의 나라를 침략하기도 했다. 정치, 경제, 군사, 문화적으로 세계를 자기 주도 하에 두고자 다방면에서 끊임 없이 공작을 펼쳐 왔다.


그러나 단 하나의 나라를 쓰러뜨리지 못했다. 바로 북조선이다. 소련도 해체되고 중국도 흔들리는 마당에 북조선은 미국의 온갖 제재를 뚫고 살아남았다. 어디 그 뿐인가. 이제 핵보유국이 되어 미국을 위협하고 있다. 아시아에서 중국과 러시아는 물론, 이란과 시리아 등 중동의 여러 나라들이 줄줄이 북조선의 길을 따라 군사적으로 무장을 하고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고 있다. 북조선과 미국은 이제 두 갈래 길에 직면해 있다. 평화 협정을 맺고 화해의 길로 가든지, 아니면 사생결단으로 한판 겨뤄야 한다.


이것이 우리 WH 회원들의 공통된 결론이다. 우리는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세계 동향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 작금의 정황은 그야말로 일촉즉발, 어디서든 터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이 와중에 타이거 박의 급보가 날아든 것이다.


이란에서는 며칠 전 시위대가 영국 대사관에 진입하여 영국 국기를 내리고 이란 국기를 올렸다. 워싱턴포스트 보도에 따르면 시위대가 아무런 저지 없이 대사관에 진입했고, 경찰도 뒤늦게 출동했으며, 평소 엄격히 제한되는 언론 취재가 허용되었다고 한다. 그 내용이 사실이라면 이란 당국이 묵시적으로 영국 대사관 습격을 허용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 일로 영국은 이란 대사관 직원 전원 철수 방침을 밝히고 런던 주재 이란 대사관의 즉각 폐쇄를 명령하는 한편 이란 외교관과 가족에게 48시간 이내에 출국하라고 통보했다.


이스라엘은 이란의 핵시설을 공격할 태세고, 이란은, 그렇다면 이스라엘과 터키의 나토 군사기지를 공격할 것이라고 맞서고 있다. "이스라엘이 우리 핵시설이나 다른 주요시설을 공격한다면 핵시설을 포함한 이스라엘 전지역이 우리 미사일 사거리에 있다는 것을 그들이 알아야 한다"고 이란 혁명 수비대 야돌라 자비니 장군이 밝혀 둔 상태다.


중동에서 주목해야 할 또 하나의 나라는 시리아다. 시리아는 과연 리비아의 전철을 밟을 것인가? 미국은 끝내 리비아는 넘어뜨렸다. 미리 훈련시켜 둔 무장 세력을 투입하여 시위를 가장한 공격을 개시하고 나토군을 동원하여 카다피를 살해했으니 일단 미국의 계획은 성공한 셈이다.


미국은 시리아에 대해서도 비슷한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스파이를 침투시켜 소요사태를 일으키고 이를 빌미로 각종 제재를 가하고 마침내 군사적 공격을 꾀할 것이다. 시리아 제재에 지금은 아랍연맹이 앞장서고 있다. 아랍권 22개국으로 구성된 아랍연맹은 지난 27일 최근 반정부 시위대에 대한 유혈 진압을 핑계로 시리아에 경제적인 제재를 가하기로 전격 합의했다. 이에 대하여 시리아는 아랍연맹의 제재는 경제전쟁의 선포라면서 맞서고 있다.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 등 일부 지역에서는 수만 명의 시위대가 경제제재에 항의 하여 대규모 친정부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시리아 외무장관 왈리드 무알렘은 이 모든 것이 시리아를 상대로 한 외세의 음모임을 이미 알고 있다고 TV 연설을 통해 발표했다. 시리아의 발표가 사실이라 해도 세계 여론은 당분간 미국의 원하는 대로 어느 정도 흘러갈 것이다. 이제까지 그래 왔으니까. 서방의 막강한 언론들이 전세계를 상대로 퍼붓는 정보의 소나기는 그대로 여론이 되어 한 나라를 무너뜨리기에 충분했다. 나중에서야 진실이 알려진들 그 나라 인민들의 죽음과 피해는 되돌릴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시리아는 이란과 더불어 일전을 불사하고 있다. 북조선이 지켜보고 있다. 중동 전선에서 이란과 시리아가 무너지면 북조선의 중동전략은 큰 타격을 입는다. 이란과 시리아의 군사적 무장에 공을 들여 온 북조선이 과연 가만히 있겠는가? 겉으로 보면 중동의 위기지만 그 속을 파 보면 미국과 북조선의 결전이다.


중동이 타오르는 순간 한반도와 일본이 동시에 불붙는다. 일본은 이미 원전 사고로 주저앉아 있으니 일본 내 미군기지가 주로 타격 대상이 될 것이다. 그 면에서는 남한도 비슷하다. 작금 북조선은 ‘청와대 불바다’ 발언으로 그들의 로드맵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바 있다. 지난 24일 밝힌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의 메시지는 심상치 않게 들렸다.


"만일 또다시 우리의 존엄을 함부로 건드리고 우리의 신성한 영공, 영해, 영토에 단 한발의 총포탄이라도 떨어진다면 연평도의 그 불바다가 청와대의 불바다로, 청와대의 불바다가 역적패당의 본거지를 송두리째 없애버리는 불바다로 타버리게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연평도 포격 1주년을 맞아 서해에서 훈련중인 남한의 군부를 의식한 발언이지만 더 깊이 파 보면 그들의 향후 로드맵을 알 수 있다. ‘우리의 존엄을 함부로 건드리고’라는 말은 대표적으로 김정일 부자의 사진을 사격 표적지에 인쇄해서 쓴 일을 말하는 것이다.


연평도는 샘플이다. ‘연평도의 불바다 => 청와대의 불바다 => 역적패당의 본거지 불바다’ 이것은 북한의 로드맵을 드러낸 발언이다. ‘역적패당의 본거지’는 미국을 겨냥한 발언이다. 청와대를 불바다로 만들겠다는 북한의 위협적인 발언에 대해 우리 정부는 딱히 대응할 방법이 없다.


어떤 이는 이것이 FTA 국회 비준에 대한 비난 여론을 덮기 위해 꾸민 일이라고 분석하는데, 그렇게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만약 그렇다면 ‘청와대 불바다’ 발언이 나오자마자 보수 언론을 동원하여 호들갑을 떨어야 한다. 1994년도의 ‘서울 불바다’ 발언을 보자. 북측 대표 박영수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기다렸다는 듯이 녹화 테이프를 언론에 공개하면서 난리를 쳤다. 이제 그 대상이 서울이 아니라 청와대다. 그런데 통일부는 “우리가 대응할 사항이 아니”라고 하면서 조용히 물러섰다.


왜 이렇게 아무 말도 못하고 꼬리를 내렸는지는 미국에 있는 WH 회원 석박사에게서 시원한 답을 얻을 수 있었다.

 


(2011년 12월 1일 오전 6시 10분 탈고, 다음 편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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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oetT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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