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푸틴을 눌러라
러시아 소식에 정통한 레베카 안은 러시아 내의 혼란상을 전해 온다. 외견상 푸틴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혼란을 부추기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내면에는 서방의 입김이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미국의 목적은 러시아가 이란 문제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서 러시아 내에 불안정을 야기하고자 갖은 방법을 다 쓰고 있다.
레베카 안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고 사적인 이야기를 주고받을 기회가 없어서인지 몰라도 전적으로 신뢰가 가지는 않는다. 다만 현재로서는 그녀가 전하는 소식과 분석이 지금까지 보아 온 다른 이들의 분석과는 다르다는 점을 느끼고 있을 뿐이다. 지켜본 결과 정확하고 예리한 면이 있으나 그 기간이 불과 3개월이니 아직 신뢰성을 판단하기에는 이른 것이다.
신뢰성이 충족되지 않는 소식통의 메시지는 다루기가 조심스럽다. 보완책을 써야 한다. 그 보완책의 하나는 역시 미디어에 드러나는 사실들이다. 정보원의 메시지와 언론의 보도, TV 화면, 블로거들의 의견, 인터넷에 올라온 영상 등을 모아서 퍼즐 맞추듯이 맞추어 나가다 보면 그림이 그려진다.
로이터 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푸틴은 미국이 러시아의 내부 상황을 혼란으로 몰고 가는 데 일조하고 있으며 다른 친미 국가들이 가세하여 수 백만 달러를 투입하고 러시아의 선거를 혼탁하게 만들고 있다고 비난하고 나섰다.
이와 관련하여 레베카 안이 뒷받침할 만한 정황을 알려 왔다. 크레믈린 내부의 푸틴 반대 세력에게 막대한 자금이 들어갔고 그들이 나서서 선거를 혼탁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내년 3월에 있을 대통령 선거에서 푸틴을 낙선시키는 것이 그들의 목표라고 한다. 자금의 원천은 미국의 국무장관 힐러리 클린턴이라는 정황이 포착되었다는 사실도 덧붙여 알려 왔다.
미국은 푸틴을 왜 낙선시키려는 것일까? 푸틴은 KGB 출신으로서 탁월한 카리즈마를 지닌 인물이다. 비록 현직 대통령은 메드베데프지만 인기에 있어서는 오히려 푸틴이 압도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미 대통령을 했던 인물로서 러시아 인민들은 그에게서 러시아의 미래를 보고 있다. 자본주의에 휘둘려 분열되기 이전의 소비에트를 꿈꾸는 인민들에게 푸틴은 이상적인 지도자다.
푸틴은 현재의 세계 정세를 꿰뚫어 보면서 군사강국 러시아를 지향한다. 지난 10월 푸틴이 군 장성들에게 한 말이 그의 지향점을 잘 나타내 준다. "아마겟돈을 준비하라!"(Prepare for Armageddon.) 아마겟돈은 흔히 마지막 전쟁을 의미하는 말로 사용된다. 종교적으로는 심판의 날을 의미하기도 하다. 한 시대를 끝내는 판가리 싸움이 준비되고 있음을 푸틴은 날카롭게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푸틴은 미국이 중동과 중앙아시아를 대규모 공격할 수 있다는 점을 일찍이 내다보고 있었다. 중국도 이를 모를 리 없다. 중국 역시 이런 상황에 대비해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러시아가 중국과 급격히 가까워지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러시아-중국 협력의 한가운데 북조선이 있다. 중동에 이란과 시리아라는 강력한 아바타를 세워 놓은 북조선은 러시아와 중국에게는 든든한 버팀목이다. 미국은 그만큼 입지가 좁아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천안함 좌초를 빌미로 북한을 제재하려던 움직임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구도가 이미 그렇게 짜여져 있었던 것이다. 북조선은 외교적으로 막강한 전선을 구축해 놓았다. 지금 이란을 제재하겠다고 하지만 역시 실패할 수밖에 없다. 북조선을 중심으로 러시아와 중국이 버티고 있는 한 이란 제재는 백 번을 시도한다고 해도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미국은 할 수만 있다면 푸틴을 낙선시켜야 하는 입장이다. 미국이 쓸 수 있는 수법은 내분을 유도하는 것이다. 리비아를 쓰러뜨리고 시리아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과 유사한 전략을 러시아에 대해서도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미국의 전략은 지금까지 거의 모두 성공해 왔다. 최근 성공한 사례는 리비아다. 이제 시리아가 시험대에 올라 서 있고 러시아도 걸려들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이러한 공작이 먹혀들지 않은 유일한 나라가 북조선이다. 철저한 폐쇄성으로 미국과 자본주의를 차단해 왔던 것이다. 국제사회라는 이름을 내세워 미국이 추진하는 혹독한 제재를 뚫고 살아남은 유일한 나라다. ‘고난의 행군’이라는 이름으로 북조선은 지옥문을 통과했다. 식량난까지 겹쳐 굶어죽는 인민이 속출하는 가장 어려운 시기에 국제사회는 제재라는 이름으로 철저히 외면했다. 그러나 누가 봐도 곧 무너질 줄 알았던 북조선은 끝내 다시 일어섰다.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라는 구호를 앞세워 지옥에서 살아 남았다. 어떤 이는 김정일의 핵전략을 ‘한의 핵전략’이라고 부른다. 아무도 도움의 손길을 뻗치지 않는 지옥문을 통과하면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북조선의 그간의 사정을 압축하여 표현한 말이다.
그 결과 아이러니하게도 북조선은 지구상에서 가장 견고한 나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집트가 무너질 때 대부분의 언론에서는 다음 차례는 북한이라고 떠들었다. 우리 워 헌터스가 볼 때 그런 분석은 뭘 몰라도 한참 모르는 얘기다. 북조선은 수천 도에서 무수히 얻어맞으면서 다져진 강철과도 같이 갈수록 단단해져 왔는데 어설픈 미디어들은 곧 무너질 것처럼 호들갑이다. 이것이 서방 언론의 위력이다. 한국의 언론은 그런 미국의 시각을 그대로 옮기고 있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 1994년 김일성 주석이 사망했을 때 세계 언론은 확신에 차서 북조선의 붕괴를 예견했다. 당시 나는 세평일보 기자 생활 4년차였다. 술자리에 앉으면 십중팔구는 북한이 곧 무너질 것이라는 얘기를 안주로 삼아 호기롭게 떠들었다. 나는 속으로 ‘과연 그럴까’ 하고 생각했지만 그 말을 내뱉지는 않았다. 북한 전문가인 김남식 선생을 몇 차례 인터뷰한 덕분에 나는 북의 체제 특성에 대해 어느 정도 감은 잡고 있었다. 김정일로의 세습을 철저히 준비해 온 북조선이 쉽사리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북한 붕괴를 한목소리로 합창하는 사람들 앞에서 그런 말을 내뱉을 엄두는 나지 않았다. 그만큼 집단적 믿음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압도하고 위축시키기에 충분했다.
혁명 1세대인 김일성의 시대가 가고 2세대 김정일이 통치하면서 북조선은 더욱 강해졌다. 이제 3세대 김정은으로 넘어가면서 강성대국을 호언장담하고 있다. 세계질서는 뚜렷하게 재편되고 있다. 물밑에서 움직이는 그림자를 우리 워 헌터스는 훤히 들여다보고 있다. 저 그림자가 수면 위로 급부상하는 날 세상은 깜짝 놀랄 것이다.
(2012년 1월 7일 오전 4시 25분 탈고, 다음 편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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