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애기봉에 불이 켜질까


석박사는 군사 분야에 능통한 분석가다. 한반도 주변의 군사훈련과 그에 따른 북조선의 대응에 관해서 나는 그의 분석에 상당 부분 의존한다. 그의 분석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확실히 입증되곤 했다. 그 실력을 인정하여 나는 그를 워 헌터스(War Hunters) 멤버로 인정한 것이다. 그의 탁월한 분석력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방대한 군사 분야의 지식은 매번 혀를 내두르게 만든다. 청와대를 불바다로 만들 수 있다는 북조선의 위협에도 남측에서 아무 말을 못한 이유도 그의 분석을 알고 보면 납득이 된다.


지난 10월 말에서 11월 초 사이에 북한군이 서해 상공에서 폭격기를 이용해 공대한 미사일을 두 차례 발사했다는 사실을 연합뉴스를 통해 확인했을 때 나름대로 뭔가 짚이는 것은 있었다. 서해상에서 대규모 호국훈련이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뭔가 심상치 않은 상황이 있었을 것이라 짐작한 것이다. 그러나 나의 한계는 거기까지다. 서해상에서 맹훈련이 진행되고 있는 와중에 북조선 인민군이 공대함 미사일을 발사하였다. 그 이상을 파헤칠 길이 없는 것이다. 깊은 내막은 역시 석박사에게 의존해야 한다.


언론에서는 시험발사라고 했지만 석박사의 견해는 다르다. 그것은 공중 무력 시위의 일환이었다. 인민군이 공대함 미사일 발사하며 공중 무력 시위를 2011년 10월 말과 11월 초에 전개한 것은 남측에서 실시된 훈련과 관계가 있었다. 바로 그 기간에 미국군이 한국군과 일본 해상자위대를 참가시킨 가운데 한반도와 그 주변에서 대규모 전쟁연습을 실시한 것이다. 석박사의 분석은 구체적이어서 그림을 맞추려는 별도의 노력 없이도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참고로 언론 보도를 비롯한 몇 가지 보조 자료만 확인하면 상황 파악은 완전하다.


당시 한국군이 서해에서 군사훈련을 실시한다는 사실은 언론에 보도되어 관심 있는 사람은 다 알고 있었다. 훈련 기간은 2011년 10월 27일부터 11월 4일까지였으며, 육해공군 병력 14만 명과 각종 군사장비가 동원되었다. 육군 2군단은 중동부전선에 걸쳐 있는 춘천, 화천, 홍천에서 기계화 부대를 동원하여 대규모 지상기동전을 연습하였다. 육군수도방위사령부 휘하 52사단 병력은 서울 방어 훈련을 실시하였다. 병력 3만 명, 전차, 장갑차, 군용 차량 3,100대가 동원되었다.


바다에서는 해군 1함대가 대규모로 움직였다. 동해에서 구축함, 초계함, 호위함, 고속정과 각종 군함 10여 척, 링스 헬기와 P-3 조기경보기 등이 동원되었다. 경상북도 포항 일대에서는 상륙수송함, 상륙함, 고속상륙정 등 20여 척, 작전 헬기 30여 대, 해병대 병력 4,300여 명, 상륙 돌격 장갑차 60여 대, 전차, 자주포, 견인포, 공격 헬기 등을 동원한 한미합동상륙전이 펼쳐졌다. 일본 오키나와에서 온 미국 해병대 원정강습단 선발대가 여기에 합류하였다. 상륙수송함, 공기부양정, 고속상륙정 등이 함께 동원되었다.


특히 서해 5도 국지전 연습이 올해 처음으로 추가되어 실시되었다. 서해 5도 분쟁 수역을 중심으로 해상 작전 연습, 대공 방어전 연습, 반(反)특수전 연습이 실시되었고 K-9 자주포와 130mm 다련장포가 실탄 사격 훈련을 하는 가운데, 육군 수송 헬기와 공군 C-130 수송기가 공중에서 병력을 투입하였고, 해병대는 전차를 출동시켰고, 육군은 AH-1S 공격 헬기를, 공군은 KF-16 전투기를 각각 출격시켰다.


석박사는 남한 언론이 보도하지 않은 내용까지 꿰고 있었다. 한국 해군 1함대의 동해 해상 작전 연습과 연계하여 미일연합함대가 연례훈련을 실시했다는 사실이었다. 미 7함대 항모강습단과 일본 해상자위대로 구성된 연합함대였다. 미국 측에서는 핵추진 항공모함 조지 워싱턴호, 미사일순양함 카우펜스호 등이 참가했고 일본 측에서는 해상자위대 제3 호위함대가 참가하였다.


호국훈련 그리고 이와 연계된 미일연합함대의 훈련을 종합해 보면 미국이 북조선에 대하여 어떤 군사적 정책을 펼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한마디로 서해 5도에서 국지전이 발생하면 이를 기화로 전면전으로 확대하고 북조선으로 공격해 들어간다는 시나리오다. 수도권과 중동부 전선에서는 지상전이 벌어지고, 동서해에서 해상전과 상륙전이 벌어지는 와중에 미일연합함대가 동해로 전격 진입하여 전면전에 돌입하는 양상이 큰 그림으로 그려진다. 대한민국 국민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위험천만한 전쟁의 위험이 드리우고 있는 상황이었다.


북조선이 긴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평소 생산 현장을 자주 시찰하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11년 10월 말에서 11월 초에 이르는 기간에는 유독 인민군 부대들을 연속적으로 찾았다.


북조선 인민군이 서해상에서 공대함 미사일을 발사한 날짜를 석박사는 11월 2일로 지목한다. 그리고 문제의 미사일은 실은 서해가 아닌 동해에서 발사된 것으로 보고 있다. 훈련 기간 중 북조선의 전투기들이 서해로도 출격하였고 동해로도 출격하였지만 중요한 것은 미사일을 발사한 그 날의 일은 동해에서 벌어졌다는 것이다. 그 날은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날이다. 미일연합함대가 오키나와 앞바다에서 제주도 남쪽 바다로 북상한 후 대한해협을 통과하여 동해로 들어선 날이다. 그 시점에 북조선 인민군 공군 연합 부대는 동해에서 대규모 공중 무력 시위를 전개했다는 것이다. 최정예 전투기 14대가 해상 시위에 참가했다.


석박사가 해상 시위에 참가한 북조선의 전투기 수까지 계산하는 데는 나름대로 근거가 있었다. 미국에 거주하는 그는 북측 언론을 자유로이 살펴볼 수 있다. 11월 3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비행사들을 만나서 치하하고 기념사진을 찍었다는 보도를 보고 유추하여 분석한 것이었다. 김정일이 공훈을 치하하고 함께 사진을 찍은 비행사들이 14명이었던 것이다. 석박사의 예리한 분석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전투에 참가한 비행사 중 한 명의 이름까지 지목했다. 그 이름은 허룡이다. 그는 2003년 3월 2일 동해에 출몰한 미군 정찰기 RC-135S를 격퇴하여 공화국영웅 칭호를 받은 전투비행사라고 한다.


그 내용을 접한 순간 나는 생각나는 것이 있어 인터넷을 검색한다. 원하는 기사의 위치는 찾았는데 링크가 되지 않는다. ‘경고- 이 웹사이트에 방문하면 컴퓨터에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라는 문구가 눈 앞을 가로막고 정작 기사 내용이 뜨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 는 없다. 귀찮지만 몸을 움직여야겠다. 자료실로 달려간다.


“어, 한기자님 안녕하세요.”


무표정한 다른 직원들과 달리 유독 인사를 잘 하는 직원이다. 이미란, 자료실을 생각하면 이 직원만 생각난다. 나머지 직원들은 마치 로봇이나 기계처럼 움직인다. 그저 자기 할 일에만 몰두하고 사람이 오든 가든 별 상관을 하지 않는다. 뭔가 진지하게 물어보면 그제야 비로소 눈을 마주치곤 한다. 그런 분위기에서 미란의 행동은 유독 눈에 띄게 마련이었다.


“어, 안녕! 중앙일보 어디?”


나는 이미 알고 있는 중앙일보 서가의 위치를 짐짓 모르는 척 물어 본다. 반가워 하는 이미란의 태도에 달리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아서다. 지금 내 관심사는 오로지 중앙일보 기사다. 정확히 말하면 2003년 11월 9일자 기사다. 인터넷이 나에게 준 도움은 오늘은 여기까지다. 내가 찾는 기사가 어느 날짜의 것인지 알려 주는 것.


복사한 기사를 들고 사무실로 돌아와 책상 위에 올려 놓고 커피를 탄다. 느긋하게 다시 음미해 볼 요량이다. 이럴 때는 마치 먹잇감을 잡아 놓은 사자처럼 뿌듯하다. 종이 한 장이 사람에게 이런 기분을 선사할 수 있는 것은 그 안에 담겨 있는 정보 덕분이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제목부터 찬찬히 음미해 본다. <"2003년 美 RC-135 정찰기 북한 갈 뻔">. 제목에 눈길을 두니 예전에 읽었던 기사 내용이 고스란히 살아난다. 본문을 다시 음미한다.


<2003년 3월 동해 공해상에서 정찰비행을 하던 미국의 RC-135 정찰기에 접근했던 북한 전투기들은 정찰기를 북으로 유인하려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RC-135기 조종사인 랜디 거친(52) 대령은 미국 네브래스카주에서 발행되는 일간지 '오마하 월드 헤럴드'지(17일자)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미그-29기 전투기가 30m까지 접근해 날갯짓을 하며 조종사가 엄지손가락을 아래로 가리키는 수신호를 여러 차례 보냈다"고 밝혔다.

거친 대령은 "전투기의 날갯짓은 자신의 비행기를 따라 오라는 의미이며, 엄지손가락을 아래로 가리키는 것은 하강하라는 뜻"이라면서 "미그-29기 조종사는 나에게 북한으로 함께 가자는 신호를 보낸 것"이라고 말했다.>


무심하게 읽으면 그저 그런 일이 있었나 보다 하고 지나칠 수도 있지만 조금만 깊이 따지고 들어가 보면 미국 쪽에서는 기절할 일이다. RC-135S에 탑재된 레이더 탐지기는 북조선의 여러 공군 기지에서 이착륙하는 모든 비행체들의 움직임을 샅샅이 포착할 수 있다. 그런데도 북조선의 미그기가 그토록 가까이 접근하도록 정찰기는 아무 것도 몰랐다는 얘기다. 그러니 수수께끼가 아닐 수 없다. 미군 정찰기는 사투를 벌이다가 가까스로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


<북한 미그-29기는 RC-135기가 동남쪽으로 급히 선회하자 수신호를 멈추고 시야에서 벗어났으나, 나중에 80㎞ 후방에서 비행하던 미그-23기 2대와 미그-29기 1대가 따라붙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거친 대령은 "북한 전투기들이 열추적 미사일을 발사할 것으로 생각했다. 10분 동안은 내 생애 중 가장 고군분투한 시간이었다"며 "미사일을 맞고 추락할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기사를 읽다 보면 당시 상황이 영화처럼 그려진다. 미사일 발사 단추의 보호 덮개를 열면 공격 목표가 디스플레이에 표시된다. 미국 정찰기가 북조선 미그기의 미사일 타격 대상으로 화면에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2003년 11월 9일, 한반도 인근의 상공에서는 북미 사이에 일촉즉발의 상황이 전개되고 있었는데 우리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북조선과 미국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 수시로 전쟁을 치르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 과정에서 15m까지 접근한 미그-29기 1대가 무모하게도 RC-135기 앞을 가로막아 비행하며 화기지원레이더를 조준했다. 그러나 조준이 빗나가자 미그기는 애프터 버너를 점화했고 이로 인해 RC-135 기체가 심하게 흔들리기도 했다는 것이다.>


애프터 버너는 전투기의 꼬리에서 뿜어내는 불줄기다. 북조선 전투기들은 작심하고 달려들었던 것이다. 특히 15미터까지 초근접 비행을 한다는 것은 웬만한 담력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후 미그-29기는 다른 3대의 미그기를 따라 북한쪽으로 철수했다.

거친 대령은 "당시 상황이 벌어져 종료되기까지 22분 간은 내 생애에서 가장 위태로운 순간이었다"며 "오키나와 가데나기지로 무사히 귀환한 뒤 3일간은 잠도 제대로 잘 수 없었다"고 말했다.>


기사를 다 읽고 다시 그 이름을 생각했다. 허룡. 그는 2003년 레이더에도 걸리지 않고 미국의 정찰기에 근접하여 위협했던 4대의 전투기 중 한 대를 조종하고 있었다. 그 일로 그는 공화국 영웅 칭호를 받았다. 그리고 2011년 11월 2일 다른 13명의 비행사와 더불어 다시 그 실력을 발휘한 것이다.


정찰기도 모르게 따라붙어 근접비행을 했던 것처럼 미일연합함대 앞에 홀연히 나타나 무력시위를 펼친 것이다. 이쯤 되면 미일연합함대 지휘관은 기절 직전까지 갔을 것이 자명하다. 실전이 벌어진다면 항공모함의 함재기들은 출격도 못하고 수장되어 버리는 것이 아닌가. 급기야 미국 군부는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한국 군부도 다독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북측의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가 11월 24일 ‘청와대 불바다’ 발언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조용히 넘어갈 수밖에 없는 데는 그럴 만한 배경이 있었던 것이다.


연말을 맞이하면서 또 하나의 발화점이 부상하고 있다. 애기봉이다. 정부와 군 당국은 경기도 김포 애기봉과 중부 및 동부전선 2곳에 성탄 트리 등탑을 세워 점등할 계획이다. 북조선에서는 “지금 북남 간 정세가 첨예한 조건에서 또다시 그런 행위가 감행된다면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조성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군 당국은 등탑 점등 때 북한의 도발에 대비해 점등 인근 지역에 병력을 증원하고 군사 대비 태세를 강화하고 방호벽을 설치하는 등의 조치를 계획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지난 해의 경우, 북조선은 말로는 위협했지만 실제 타격은 없었다. 그러나 올해도 그냥 넘어가리라고 낙관할 수만은 없다. 2012년 강성대국 원년을 앞둔 상황이다. 내년 4월 15일은 김일성 주석 탄생 100주년 기념일이다. 북조선은 그 안에 뭔가 결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고자 미국을 압박하고 있다. 올해에는 과연 애기봉에 불이 켜질 것인가. 켜진다면 전깃불로 그칠 것인가, 아니면 더 큰 불로 번질 것인가.

 

(2011년 12월 12일 오후 12시 50분 탈고, 다음 편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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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oetT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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