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을 연재하기까지 통찰력을 주신 분들이 있습니다. 제가 마음으로 신세를 지고 있죠. 잘 되면 그 분들 덕이고요, 잘못 되면 모두 제 탓입니다. 좋은 날이 오면 그 분들이 누구인지 밝히겠습니다.)

 

중동의 전운(2)

 

지난 2011년 11월 10일.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는 테헤란 군사대학의 강단에 섰다. 그는 미국과 이스라엘을 향해 경고의 메시지를 날렸다. 이란을 공격하거나 군사적으로 위협하면 모든 군사력을 동원해 반격할 것이라는 내용이 그 핵심이었다. 그의 연설 내용은 이란 국영 라디오를 통해 전국에 중계됐다. 정치적인 발언을 좀처럼 하지 않는 그가 이처럼 독설을 퍼붓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서방의 분석가들은 이를 대수롭지 않은 정치적 수사로 치부하는 분위기다. 하메네이의 연설은 이스라엘과 미국을 향한 경고라기보다 자국 내 인민을 위한 정치적 발언에 불과할 것이라는 얘기다. 분석과 코멘트를 살펴보면서 나도 모르게 코웃음을 쳤다. 예전에는 나도 분명 그들의 의견과 궤를 같이 했다. 아무런 의심도 없이…….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도 언론인으로서는 참 한심한 존재였다.


기자가 자기 시각을 갖지 못했다는 것은 곧 남의 눈으로 보고 남의 귀로 듣고 남의 말을 전한다는 얘기와 다를 바가 없다. 그저 소문을 물어 나르는 수다쟁이에 불과한 것이다. 그런 나를 보고 배석달은 자주성도 주체성도 없는 껍데기 기자라고 놀렸다. 놀렸다기보다 나무랐다고 보는 것이 더 어울리는 표현이다. 허름한 겉모습과 상스러운 말투와 달리 그의 말에는 어딘지 모르게 힘이 실려 있다. 그가 때로는 농담처럼, 때로는 독설처럼 내뱉은 말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 울림이 점점 커지는 것이다.


기자로서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싫든 좋든 그 친구의 가르침(?) 덕분에 지금은 어느 정도 다른 각도에서 보는 눈이 생겼다. 하메네이의 발언에 대한 서방 언론의 분석에는 중대한 함정이 있다. 그들은 이란을 과거의 모습으로만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하메네이의 강경 발언 뒤에 무엇이 있는지 그들은 모른다. 만약 안다면 짐짓 모른 체하고 있는 것이다.


이란의 강경 입장에 비해 미국의 반응은 매우 수세적이다. 11월 10일자로 AFP가 전하는 소식에 주목한다. 국방장관 리언 파네타의 발언이 실려 있다.


<“의도하지 않은 결과가 나오지 않도록 신중해야 한다.…의도하지 않은 결과란, 이란이 하고자 하는 일을 막지 못하는 결과일 수도 있고 더욱 중요한 점은 그 지역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고 나아가 그 지역 미군에게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맙소사! 미국의 국방장관이 떨고 있다. 직감이다. 이란은 피로 보복하겠다고 하는데, “그래 한번 붙어 볼래?” 하고 나와야 마땅할 미국이 몸을 잔뜩 사리고 엉뚱한 소리만 하고 있는 것이다. 이라크의 경우와는 딴판이다. 있지도 않은 대량살상무기를 핑계로 침략하던 미국이 정작 핵개발을 강행하고 있는 이란에 대해서는 몸을 사리고 있다.


이라크를 공격할 때는 어떠했던가. 지난 2003년 3월 17일 미국 대통령 조지 W. 부시는 대국민 연설을 통하여 호기를 부렸다. ‘사담 후세인과 그 아들들은 48시간 내에 이라크를 떠나라. 거절한다면 군사적 충돌이 일어날 것이다. 이라크에 주재하는 언론인과 검사관을 포함한 모든 외국인은 자신들의 안전을 위해 즉각 이라크를 떠나라.’는 요지였다. 그리고 사흘 뒤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는 불바다가 됐다.


그런데 미국은 지금 어떤가? 국방장관이라는 자가 어떻게든 싸움을 피하고자 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그 지역 미군에게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말은 또 뭐란 말인가? ‘심각한 영향’이라면 위태롭게 된다는 말 아닌가. 아뿔사! 중동에 남아 있는 미군은 정말 포로 신세란 말인가? 배석달이 말한 대로다. 철조망 안에 갇혀 있지만 않을 뿐 ‘중동 지역 미군은 포로 신세’라고 했다. 리언 파네타가 한 말의 진짜 의미는 바로 그것이다. 물 밑에서 전개되는 일을 아는 사람만 그 뜻을 감지할 수 있다. 배석달이 성서에 나온 표현 빗대어 말한 대로 귀 있는 자만 알아들을 수 있는 얘기다.


그렇다. 이라크는 대량살상무기가 있어 침략을 당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미국을 위협할 수 있는 군사적인 수단이 없어서 당한 것이다. 10년 이상 제재를 당하여 피폐해진 이라크를 미국은 ‘정의’라는 이름으로 쳐들어갔다. 새 밀레니엄 축제의 흥분이 가라앉기 전에 전쟁의 흥분이 세계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21세기 벽두에 전쟁의 폭음을 들으면서 우리는 새 천년이 평화의 세기가 될 것이라는 환상에서 깨어나야 했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난 올해 리비아도 쓰러졌다. 미국의 꼬임에 넘어가 핵 개발을 포기한 결과다. 핵개발을 포기한 결과 리비아는 한동안 미국과 관계정상화의 길로 들어선 것처럼 보였다. 2004년 6월 28일 미국 국무부는 리비아에 연락사무소를 개설한다고 발표하였고 2006년 5월 15일 콘돌리자 라이스 당시 국무장관이 미국이 리비아와 관계를 정상화하였다고 발표하는 등 유화적 조치가 가속화되었다.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한다는 발표도 있었다. 2008년 10월 5일 미국은 리비아에 무역사무소를 개설하였다. 그에 따라 교역량이 늘어났고 2010년 5월 20일에는 트리폴리에서 미국-리비아 무역투자기본협정을 체결했다.


리비아가 주권과 안전을 보장받았다고 착각하고 있는 사이 미국은 리비아를 무너뜨릴 준비를 치밀하게 진행해 나갔다. CIA는 망명중인 리비아 군 출신 지휘관 두 명을 은밀히 지원하면서 반군을 육성하였다. 북아프리카와 중동에 재스민 혁명의 불길이 번지자 미국은 이 기회를 한껏 이용했다. 비밀리에 준비해 두었던 반군의 핵심 세력들이 속속 리비아로 들어가 작전을 진행한 것이다.


내막을 모르는 이들은 리비아 사태를 재스민 혁명의 연장선에서 이해하려 하는데, 이것이야말로 서방의 언론 플레이에 놀아나는 것이다. 재스민 혁명으로 자주권을 찾아가는 여타 나라와 리비아 사태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다른 나라들이 민중의 봉기에 쉽게 무너진 것과는 달리 리비아는 꽤 많이 버텼다. 2011년 2월부터 시작된 내전이 카다피가 살해된 10월까지만 해도 8개월간 계속되었다. 그 뿐만 아니라 카다피가 살해된 지 한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교전이 그치지 않고 있다. 나토의 개입이 아니었다면 더 리비아는 더 오래 버티거나 정부군이 반군을 진압했을 것이다.


여타 국가들은 민중 봉기가 자발적으로 일어나 많은 국민들이 가세했지만 리비아는 대규모 민중봉기 대신 무장 세력이 신속히 등장했다. 미국이 배후에서 치밀하게 공작하고 무기까지 지원했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여러 정황들이 포착되었다. 순수한 민중 봉기가 아니라는 얘기다. 리비아가 쉽게 무너지지 않자 미국은 나토를 앞세워 리비아를 폭격했다.


카다피는 미국에게 속아 핵을 포기한 것을 뼈저리게 후회했을 것이다. 미국을 믿은 것이 천추의 한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그러나 냉혹한 현실 앞에서 뒤늦게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는가?


그러나 미국의 중동 전략은 여기서 멈춰야 할지도 모른다. 시리아와 이란을 겨누고 있는 미국의 칼 끝은 떨리고 있다. 국방장관이 리언 파네타의 말에서 그 떨림이 전해져 온다. 이란은 핵 개발을 멈출 의사가 없다. 미국은 이런 이란의 태도가 두렵다. 이란은 북조선의 방식을 따르고 있는 것이다. 미국에게는 악몽과도 같은 현실이다.


이란을 건드리면 북조선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북조선이 이란에 대하여 그동안 무기를 지원하고 군사적으로 훈련시켜 온 것은 북조선 방식의 중동 전략이다. 그렇다. 중동전략은 미국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동아시아의 작은 나라 북조선도 오래 전부터 중동을 전략적 거점으로 삼고 공을 들여 온 것이다. 세계를 자기 멋대로 쥐락펴락하던 미국에게는 천만 뜻밖의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북조선은 이미 만반의 조치를 다 갖춘 듯하다. 아시아에서는 중국과 러시아를 확실하게 껴안았고, 중동에서는 이란과 시리아를 무장시켜 놓고 대기중이다.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난다면 아시아와 중동이 그 발화점이 되리라는 배석달의 말은 바로 이런 상황을 두고 한 말이었다. 그러나 가장 큰 참화는 미국 본토에 떨어질 것이라는 점도 그는 빼놓지 않고 말하곤 했다.


열쇠는 다시 북미 대결로 귀결된다. 북조선과 미국의 대결, 일면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으로 보이는 이 대결이 과연 어떤 결말을 향하여 가고 있는가? 미국에 대하여 북조선이 하는 말은 늘 변함이 없다. "확실하게 평화 조약 맺자! 아니면 진짜 전쟁 맛이 나는 전쟁을 하든지!"

 

(2011년 11월 16일 오후 10시 20분 탈고, 다음 편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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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oetT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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