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을 연재하기까지 통찰력을 주신 분들이 있습니다. 제가 마음으로 신세를 지고 있죠. 잘 되면 그 분들 덕이고요, 잘못 되면 모두 제 탓입니다. 좋은 날이 오면 그 분들이 누구인지 밝히겠습니다.)

 

 

중동의 전운

 

 

모두 퇴근한 사무실에서 서성거리며 커피를 홀짝인다. 책상마다 산더미처럼 무질서하게 쌓인 신문이며 책이며 온갖 자료들이 모두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듯하여 민망해지기까지 한다. 이런 느낌은 처음이다.

 

한국에서 기자로 살아가려면 기자로서의 자존심을 어느 정도는 버려야 한다. 편집국과의 마찰도 한두 번이지 소신을 가지고 작성한 기사가 번번이 수정되거나 배제되는 경우를 몇 차례 당하고 나면 그 후부터는 알아서 잘리지 않을 내용만 취재하고 송고하게 된다. 아니면 끝까지 싸우다가 퇴직하던지.

 

부끄럽게도 나는 퇴직을 불사하고 싸우지는 않았다. 지금은 때가 아니니 일단 비위 맞추며 살아남았다가 때가 되면 소신을 펼쳐야 한다는 논리로 자신을 합리화하고 살았다. 그런 나에게 기자로서의 소신을 다시 생각하게 해 준 친구가 바로 배일수, 아니 배석달이다. 그가 일깨워 준 것은 기자로서의 소신뿐만이 아니다. 그가 나에게 준 더 큰 선물은 바로 통찰력이다. 첫 만남에서 그는 나에게 통찰력을 심어 주려고 무진 노력했음을 안타깝게도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야 임마, 기자 ㅅㄲ가 봉사처럼 더듬거리기만 하냐? 너, 성경에 뭐라고 나왔대? 장님이 장님을 안내하면 끝장나는 겨, ㅅㄲㅑ!”

 

국제 정세에 대해 몇 가지 이야기를 주고받던 중에 그가 던진 독설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가 의도적으로 국제 정세를 말하도록 유도했다는 의구심이 든다. 그렇다면 그는 기자로서의 내 실력을 시험해 보려 했던 것일 수 있다. 하여튼 그에게 나는 낙제점이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자, 하늘에 별들이 있지. 그거 하나하나는 아무 의미가 없어. 그냥 점이여. 그걸 선으로 이어 놓아야 북두칠성도 되고 카시오페아도 되고 전갈도 되고 독수리도 되는겨. 안 그러냐, 이 ㅆㅣㅂㅅㅐ야?”

 

내가 그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흘려버린 것은 나의 선입관 때문이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동굴 속에서 혼자 살아가는 것도 그렇거니와 쌍욕이 섞인 말투 때문에 그의 말은 전혀 귀담아 들을 것이 못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니가 명색이 기자라면, 그림을 보여 주야지.”

 

그러면서 그는 자기 손을 펴서 뻗으며 짐짓 뭔가를 보여 주는 시늉을 했다. 이어서 그는 떠돌이 약장사 흉내를 내며 떠들어댔다.

 

“자, 여기 점이 하나 있지요. 이 점은 그냥 있는 것이 아니여. 바로 이 점과 연결돼서 선이 되기 위해서 있는 것이여. 우연이란 것은 한—나도 없는 것이여.”

 

그가 이렇게 말할 때 마침 멀리서 한 아주머니가 들길을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저 앞에 지나가는 아줌마도 지금은 하나의 점이지만 어딘가에 남편이 있고 애새끼덜이 있을 것이여. 그 점들을 이어 놓으면 우연이 아닌 것이여. 필연여. 알겄냐? 이 씨댕아. 우연처럼 보이는 점들을 연결해서 필연을 보여 주는 것이 기자 아니겄냐?“

 

다 아는 얘기지만 정작 의식하지 못하고 살았던 얘기. 지금 생각해 보면 나에게 꼭 필요한 명언이었다.

 

 

YTN에서는 이란 관련 소식이 흘러나온다.

 

<이란이 핵무기 개발 작업을 진행 중인 것으로 의심된다고 국제원자력기구, IAEA가 밝혔습니다. 이에 앞서 이스라엘이 이란 핵시설에 대한 군사 공격 가능성을 경고한 가운데 미국은 외교 수단을 통한 문제 해결을 강조했습니다.>

 

미국은 말리는 시누이의 모양새다. 미국이 어느 나라를 공격할 때는 먼저 그 나라의 이미지를 망가뜨린다. 인권을 짓밟고 대량살상무기를 제조하는 깡패국가로 만들어 버린다. 서방 언론들이 이에 동조하고 IAEA와 같은 기구가 나서서 침략의 구실을 만든다. 아프간도 이라크고 그렇게 당했고 리비아도 그렇게 당했다.

 

리비아 다음으로는 시리아가 그 대상이 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었다. 시리아가 미국의 타격 대상으로 지목되고 있다는 정황이 포착되었고, 그렇게 된 이상 이란까지 그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것은 필연이다. 세평일보 기자들 사이에서 이러한 예측을 한 것도 내가 처음이었다. 내가 비교적 빠른 예측을 할 수 있었던 것도 따지고 보면 배석달의 영향이다. 그가 제시한 몇 가지 힌트는 중요한 공식으로 내 머리 속에 자리잡았다. 대부분의 예측이 적중했다. 물론 세밀한 부분에서 맞지 않는 부분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연될 뿐 틀린 것은 아니었다.

 

3차 대전이 일어난다면 전쟁은 중동과 아시아에서 동시에 전개될 것이다. 이것도 공식 중 하나에 속한다. 이란과 시리아는 북조선의 지원으로 군사적인 무장을 해 왔다. 미국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이란이 핵 개발을 멈추지 않는 것은 그만한 배후가 있기 때문이다. 북조선은 이미 핵무장을 마치고 미국을 위협하고 있다. 미국은 눈에 가시인 북조선을 아프간이나 이라크처럼 침략하지 못한다. 2010년도에 연평도를 포격하는 명백한 군사적 도발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아무런 실질적 대응을 하지 못했다. 이란은 그러한 북조선의 힘을 알고 있다.

 

그렇다. 사실 아시아와 중동의 전쟁 위기는 북미 대결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 중동 패권에 있어서 이스라엘이 미국의 아바타라면 시리아와 이란은 북조선의 아바타다. 이제까지 알고 있던 북조선에 대한 상식으로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사실이다. 북조선을 객관적으로 이해하려고 했던 나에게도 북조선에 대한 이미지는 대다수 사람들의 인식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굶주림의 나라 북한, 탈북자가 줄을 잇는 위기의 나라 북한, 자유도 인권도 짓밟힌 악의 축 북한. 대체로 이런 시각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못했다. 그래서 배석달은 나에게 과거의 시각을 벗어던지고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보라고 그토록 강조했던 것이다.

 

“야, 너 주역이라는 거 알지. 그 핵심 내용이 뭐냐? 세상 모든 것은 다 변하는 거여. 한때 천하를 움켜쥐던 황제도, 제국도 때가 되면 기우는 거여. 변화! 응? 항시 변화한다 그 말여. 돌고 돈다 이거여. 근디 준비를 하는 자에게 변화는 기회여. 준비를 안 하면 꽝이여. 야, 기자라고 명함 찍어 뿌리면 다 기자냐? 누가 철저히 준비를 해 왔는지, 한번 보란 말여. 썩어빠진 동태눈으로 보지 말고, 어제의 눈으로 보지 말고 새로운 눈으로, 심봉사 눈 뜨디끼 세상을 새로 보란 말여.”

 

그 말의 의미를 아는 데는 거의 1년이 걸렸다. 확신을 갖게 된 계기는 연평도 포격이었다. 북의 포탄이 남한의 영토에 떨어지는 엄중한 사건이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힘을 쓰지 못했다. 있지도 않은 대량살상무기를 핑계로 이라크를 침략하던 미국이 북조선에는 꼬리를 내리는 것이었다. 모든 것은 명백해졌다. 북조선과 미국의 힘의 대결에서 미국은 기선을 제압당한 것이다.

 

남은 것은 대리전이다. 미국이 전면에 나서지 않으면서 남한 정권을 내세워 북조선과 대결하게 하는 것! 그러나 전선은 한반도에 국한되지 않는다. 대리전의 전선은 중동까지 뻗쳐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과 이란의 대결은 곳 미국과 북조선의 대결이다. 뉴스는 현지 특파원의 목소리로 이어졌다.

 

<아마노 유키야 IAEA 사무총장은 보고서를 통해 이란이 핵무기 개발과 관련 있는 활동을 하고 있다는 정보가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IAEA는 이란이 핵탄두에 우라늄을 활용하고 있으며 컴퓨터를 사용한 모의 핵폭발 실험을 하고 있다고 결론지었습니다. … 보고서는 "이란의 핵개발 프로그램이 군사적인 차원으로 활용될 가능성을 심각하게 우려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에 앞서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은, 이란은 핵 개발을 중단하지 않을 것이며 이란을 공격하는 국가는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하지만 에후드 바라크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이란 핵시설에 대한 군사공격이 실제로 이뤄질 수 있음을 강조했습니다.>

 

이란은 북조선이 간 길을 따르고 있다. 미국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핵 개발을 중단하지 않고 끝내는 핵 보유국이 된 그 길을 따르고 있는 것이다. 이란뿐이 아니다. 시리아 역시 북조선과 가까운 관계 속에서 군사력을 강화해 왔다.

 

시리아는 일찍이 북조선의 무기를 조달받아 배치하는 데 적극성을 보이고 있다. 올해 4월 현재 파악된 상황으로, 시리아는 북조선의 지원을 받아 사거리 700km의 스커드 D 미사일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시리아는 이를 자국에 배치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인접 레바논의 무장 세력 헤즈볼라에게 넘기기도 한다. 북조선의 허가를 받아서 하는 일이다. 시리아 국방부는 미국의 후원을 받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등의 세력이 공습할 것을 염두에 두고 훈련과 무장을 하고 있다. 동시에 이란과 협력 관계도 유지한다.

 

리비아 카다피 정권의 붕괴와 더불어 전선은 더욱 뚜렷해지는 양상이다. 시리아 대통령 알 아사드는, ‘나토가 시리아를 공격할 경우 이스라엘의 수도 텔아비브를 공격할 것’이라고 이미 공언한 상태다. 개전 6시간 안에 수백 기의 로켓과 미사일을 골란고원에서 텔아비브로 날릴 것이며, 레바논의 헤즈볼라에게 요청하여 이스라엘에 로켓과 미사일 공격을 집중적으로 퍼부을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지난 10월 초에 언론에 공개된 내용이다.

 

장전된 총의 방아쇠를 당길 주체는 미국과 북조선이다. 이러한 엄중한 시기에 북조선과 미국의 협상은 과연 어떻게 방향을 잡았으며 후속조치가 어떻게 흘러가고 있을까? 지난 10월 말에 열린 북미 고위급 회담의 결과가 오리무중인 가운데 중동은 전운이 감돌고 있다. 대화로 가닥을 잡았다면 전쟁은 불필요하거나 극히 제한적일 수 있다. 그러나 그 반대라면 중동의 하늘에 드리워진 도화선은 그대로 꺼지지 않을 수도 있다.

 

 

(2011년 11월 10일 새벽 1시 20분 탈고, 다음 편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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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oetT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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