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전쟁(2)

 

30년 만에 처음으로 배일수를 만난 날 그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듣지 않은 것이 두고두고 후회된다. 동굴 속의 그 아늑한 자리에 마주 앉자 그는 녹차를 제공했다. 차를 준비하는 동작은 그의 말투와는 딴판으로 단정하고 절제된 모습이었다. 불쑥불쑥 뱉는 평소 말투와는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지만 어색하지는 않았다. 물을 끓이고 차를 우려내고 찻물을 따르고 하는 일련의 동작들이 동중정(動中靜) 자체였다. 움직이지만 움직이지 않는 듯 절도가 있으면서도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이었다. 옛친구의 또 다른 모습에 조금은 의외라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한동안 이어진 침묵을 먼저 깬 것은 그 친구였다.


“이 동굴 안에 있으면 핵전쟁도 비껴갈 수 있어, 야.”


나는 피식 웃으며 응대했다.


“잘도 살아남겠다. 겨우 20미터 깊이에 두꺼운 철판 문도 없고……. 살아남으면 또 뭐 하냐? 공기도 먹을 것도 다 오염돼서 어차피 죽게 될 텐데.”


그 친구는 나를 빤히 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그 표정이 그리 장난스럽지 않아 보였다.


“지향점을 볼 줄 알으야지. 손가락을 보지 말고 그 손가락이 가리키는 달을 보란 말여. 예수도 그리 말허지 않었냐.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들을지어다 하고 말여.”


뭔가 테스트를 당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내 아이큐를 시험해 본 것인가, 아니면 나하고 선문답 하자는 것인가 하는 그런 류의 생각이었다.


그리고 나서 그는 긴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바로 그 이야기를 귀담아 들었어야 했다. 그 이야기가 바로 제3차 세계대전에 관한 것이었는데 그 때 나는 건성으로 듣고 흘렸던 것이다. 사이비 종교 단체에서 많이 듣던 허황된 이야기라고 지레 치부했던 것이다. 솔직히 먼 길을 운전하고 내려간 터라서 피곤하기도 했다.


지금 기억나는 것이란 대략적인 줄거리뿐이다. 서구 열강이 몰락하고 이어 우리나라가 세계의 중심국이 되어 조공을 받게 될 것이라는 얘기였다. 때로는 정감록과 같은 예언서류의 이야기도 등장하고, 심지어 신약성서의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것과 유사한 이야기가 펼쳐졌다. 중요한 것은 그가 구체적인 연도를 언급했다는 점이다. 2천 몇 년에 뭐가 어떻게 되고, 몇 년 뒤에 또 유럽이 어떻게 되고, 미국이 어떻게 되고 그런 내용이었다.


무슨 헛소리인가 싶어 나는 지루했지만 그 친구의 진지함 앞에서 그런 내색을 할 수 없었다. 그저 참선한다 생각하고 나는 속으로 다른 생각도 하고, 재미 있었던 영화도 회상하고 하면서 참고 있었던 것이다. 나중에는 졸음에 겨워 고개를 몇 차례 끄덕이기까지 했다.


눈을 떠 보니 나는 누워 있었고 친구는 조용히 책장을 넘기고 있었다. 이야기를 할 때는 나와 마주했었는데 눈을 떴을 때는 방향을 90도 틀어 벽 쪽을 향하고 있었다. 이야기를 다 듣지 못하고 잠들었구나 생각하니 난감하고 미안했다. 친구가 씩 웃으며 던진 말이 나의 무안함을 날려 주었다.


“피곤했던 모양이지?”


나는 겸연쩍게 웃으면서 대답을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말을 이었다.


“야, 내가 언제 잠들었냐? 얼마나 잤어?”


“야이 ㅆㅂ, 너는 얼마나 잤는지 그 시간이 그렇게 중요하냐? 야, 순간이 영원이고, 영원이 순간인겨. 시계에 목 매달지 마, 임마.”


평소와 같은 말투에 나는 또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배일수와 헤어져 아직 남아 계신 마을 어른 한두 분을 찾아 인사를 드린 다음 그 날 저녁 초등학교 동창회에 참석했다. 그간 고향 친구들은 해마다 모임을 이어 왔지만 전체 모임은 그 날이 처음이었다. 배일수는 동창회에 나오지 않았다. 어렴풋이 짐작한 대로였다. 한 친구에게서 배일수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우리가 졸업한 해, 그러니까 1978년에 배일수의 부모님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단다. 이웃 사이에 작은 갈등이 생겼는데, 급기야 몇몇이 모여 몸싸움까지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와중에 누군가가 심하게 밀치는 바람에 배일수의 어머니가 중심을 잃고 휘청거렸고 때마침 달려오던 차를 보고 배일수의 아버지가 뛰어들면서 그녀를 붙잡긴 했는데 애석하게도 차를 피하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두 분이 모두 머리를 심하게 부딪쳐 결국 한꺼번에 사망한 것이었다.


졸지에 고아가 된 배일수를 데려다 한동안 돌보고 키워 준 사람이 정혜사의 영관스님이라 했다. 일수는 부모님을 잃은 충격에서 서서히 벗어나 영관스님을 아버지처럼 따랐다고 한다. 일수가 그 동굴에 기거한 것은 2007년 여름부터인데 그 이유를 알 수 없다고 했다. 아버지처럼 따르는 영관스님도 살아 계신데 왜 홀로 나와서 동굴 생활을 하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로부터 3년이 되는 지금 나는 그를 다시 만나러 가는 것이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동창회에 갈 때마다 그를 꼭 다시 보고 싶었지만 시간이 여의치 않아 그냥 올라오곤 했다. 오늘은 일부러 그를 찾아 가는 것이다. 제3차 세계대전과 관련한 이야기를 다시 자세히 듣고 싶어졌다. 실은 진작 찾아가 만나고 싶었지만 특별한 계기가 없이 지방에 내려간다는 것이 그리 쉽지 않아 미루고 있었던 것이다.


세계대전에 대한 그의 말이 모두 말장난으로 들렸는데 그로부터 해가 세 번 바뀌면서 내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다. 돌아가는 정세를 가만히 보니 그가 말한 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더구나 최근 들어 급변하는 정세들은 모두 그가 일찍이 말한 내용 그대로다.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군사적으로 휘청거리는 미국, 반세기 넘게 미국의 압박을 견뎌내고 유일하게 살아남은 북조선, 그 북조선이 최근 들어 발휘하는 알 수 없는 정치 외교적인 힘, 세계 곳곳에서 친미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자주화로 돌아서는 제삼세계 국가들. 게다가 일찍이 없었던 기이한 자연재해가 하필 미국과 친미 국가들을 주로 들이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그가 말한 대로다.


“어이, 일수.”


동굴 앞에서 바위에 걸터 앉아 가을 햇살을 받고 있던 일수가 나를 바라보지도 않은 채 대답한다.


“기자 양반—, 이제 오시나—?”


내가 대답하기를 기다리지 않고 일수는 말을 이었다.


“나 이름 바꿨네. 석달, 배석달 어떤가?”


그러면서 드디어 나를 바라봤다. 역시 거무스름한 얼굴에 반짝이는 눈빛이 인상적이다.


“석달? 이름이 그게 뭐냐, 삼개월이란 뜻인가?”


농담삼아 응답했더니 일수, 아니 석달은 웃음을 짓는다. 오늘따라 어쩐지 젊잖아 보인다.


“지난 달에 바꿨지. 난 자네가 진작 올 줄 알았는데 꽤 늦었군.”


어쭈, 이제 자네라는 표현을 쓴다. 말끝마다 이놈저놈 하면서 쌍시옷 없이는 말을 이어가지 못하던 놈이……. 그리 좋아 보이지도 않는데 왜 이름을 배석달로 바꾸었을까, 생각하면서 그가 앉아 있는 바위에 함께 걸터앉았다. 앉고 보니 그와 나의 시선은 약 35도 정도로 각기 다른 방향을 보게 되었다. 하늘은 화창하고 산은 울긋불긋 물들어 가고 있었다. 한동안 그대로 앉아 있다가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태국에는 물난리가 장난이 아니더군.”


친구는 한숨을 작게 내쉬고 시선을 멀리 산마루로 향한 채 말이 없다. 그의 시선을 따라 눈길을 더듬다 보니 산등성이에 송전탑이 햇빛에 빛나고 있다. 고독해 보인다. 기피 대상이면서도 없어서는 안 될 필요악이다. 친구를 슬쩍 바라보고 눈길을 거둔다. 나는 혼잣말처럼 입을 열었다.


“홍수며 지진으로 장난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잔인한 거 아닌가? 그 많은 사람들이 무슨 고생이냐고.”


친구의 한숨이 또 새어나왔다. 잠시 기다리니 드디어 입을 연다.


“이걸 생각해 봐. 지진 대신, 홍수 대신, 산불 대신, 폭설 대신 폭탄이 떨어진다면 어떨까?”


그리고는 입을 닫았다. 그렇다. 무기를 동원한 전쟁은 인명피해가 훨씬 많고 더 잔인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노골적인 전쟁행위다. 공격받은 측에서는 당연히 반격을 하게 된다. 그러면 걷잡을 수 없는 사태로 이어진다. 만약 재해가 전쟁의 수단으로 이용된다면 인명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전쟁을 표면화하지 않으면서 상대편을 무력화시키는 것이다.


일본도 그렇게 당하고 있는 것일까? 아시아에서 전쟁이 터진다면 가장 적극적으로 가담할 나라가 일본이다. 그런 과거도 있다. 일본은 비밀리에 재무장을 준비해 왔을 뿐만 아니라 이를 공공연히 표방하기도 한다. 미국은 적당한 기회를 봐서 일본의 재무장을 은근히 승인할 수도 있다. 한국의 현 대통령은 뼛속까지 친일친미라고 그의 형이 말할 정도이니 일본이 재무장할 조건은 꽤 무르익은 셈이다. 북한의 도발을 핑계 삼아 군사훈련을 하는 자리에 자위대가 참관하기도 했으니 일본의 야욕이 본격화되는 것은 아닌지 염려도 되는 시점이다.


어쨌든 이런 일본이 지금은 후쿠시마 원전 파괴로 주저앉아 있는 것이다. 이것이 인위적인 공격의 결과라면 실로 엄청난 일이다. 쓰나미가 몰아닥칠 때 유에프오가 나타나기도 했다. 유튜브에 올라온 동영상을 보니 하얀 미확인 비행물체 두 개가 바다로부터 육지로 이동하고 그 뒤를 파도가 밀어닥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쓰나미까지 인위적으로 일으킨 것일까, 아니면 쓰나미라는 자연재해를 틈타 원전만 공격한 것일까?


이제 원래 하고 싶었던 질문을 해야겠다.


“지난 번 나한테 말해 준 거 있지. 3차 세계대전 이야기 말야. 그거 다시 한번 얘기해 줄 수 있어?”


“야 임마, 리바이벌은 없어, ㅆㅂ, 얘기할 때 뭐 했냐, 기자 새끼가.”


그럼 그렇지. 이 친구 말투가 제자리를 찾았다.


“야, 성경을 봐라. 예수 형님이 심각하게 기도하고 있는데 제자들은 자빠져 자고 있어요, 드런 ㅅㄲ들.”


그렇다. 이건 성서에 나오는 얘기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는 심각하게 기도했다. 죽음을 앞둔 상황이었다. 기도를 하다가 제자들이 있는 곳에 와 보니 그들은 잠에 빠져 있었다. 예수는 그들을 깨워 당부했다. 내가 지금 죽게 생겼으니 제발 깨어서 함께 기도해 달라고……. 또 한 차례 기도를 마치고 돌아와 보니 제자들은 여전히 잠들어 있었다. 예수의 운명은 결정되었다. 죽어야 했다. 그와 함께 깨어 기도하는 제자 하나 없이 그는 홀로 죽음의 길로 내몰렸다.


이 친구는 서운한 내심을 예수를 빗대어 표현한 것이다. 자기는 나름대로 심각하게 얘기하고 있는데 나는 그 때 잠들어 버린 것이다. 할 말이 없다.


서울로 올라가는 고속도로에 어둠이 서서히 내린다. 친구는 이름을 왜 바꾸었을까? 석달? 혹시 세 달 남았다는 암시는 아닐까? 그렇다면 뭐가 세 달 남았다는 것일까? 세 달 후에는 무슨 일이 일어난다는 얘길까? 자동차는 내비게이션이 있어 알려주는 대로 방향을 잡으면 되지만 머리 속의 길은 얽힌 실타래처럼 복잡하다. 라디오를 켠다. 여성 앵커의 목소리가 나온다.


“미국 동북부 지역에 때 이른 겨울 폭풍이 몰아닥쳤습니다. 강풍과 폭설에 전력선이 끊기면서 230만 가구가 정전 피해를 보았고 철도와 도로 항공편이 중단되거나 지연되는 사태가 이어졌습니다.”


오늘은 10월 30일. 지금 한반도에서는 대규모 군사훈련인 호국훈련이 진행되고 있다. 지난 27일부터 시작하여 11월 4일까지 계속될 예정이다. 훈련은 '결정적 행동'에 해당하는 것으로 적지에 상륙하여 적의 최초 진지를 돌파하고 공격 기세를 유지할 수 있도록 적의 주의를 전환하며 공군 전술항공기로 근접 지원하는 등으로 진행된다.


이에 대하여 북조선에서는 "괴뢰패당의 이번 호국훈련은 동원된 무력규모와 내용 그리고 강도에서 놓고 볼 때 임의의 시각에서 실전으로 넘어갈 수 있는 극히 위험천만한 북침예비전쟁"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미국의 때 이른 겨울 폭풍은 이 기간에 시작된 것이다. 현지 보도인의 목소리가 이어진다.


“때 이른 눈으로 거리가 하얗게 덮였습니다. 눈과 함께 강풍과 추위가 엄습하면서 거리는 더 한산해졌습니다. 펜실베니아와 매사추세츠 일부 지역에는 무려 30cm가 넘는 많은 눈이 쌓였습니다. 게다가 거센 바람에 나뭇가지가 꺾이고 부러지면서 전력선을 건드려 정전 사태가 속출했습니다.…인명 피해도 잇따랐습니다. 도로가 빙판이 되면서 교통사고가 이어졌고 감전사 등 안전사고도 반복됐습니다.…피해가 이어지자 결국 뉴저지주와 코네티컷주가 '비상사태'를 선언하는 등 '경보'가 잇따랐습니다. 게다가 이번 겨울폭풍의 피해지역이 지난 여름 허리케인 '아이린'이 휩쓸고 지나간 지역이라 전문가들은 더 큰 후유증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2011년 11월 3일 새벽 4시 탈고, 다음 편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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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oetT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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