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인 10명만 있어도 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성서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숨막힐 듯 각박한 세상 속에서도 아름다운 사람, 사람다운 사람을 간혹 보게 됩니다. 그럴 때 살맛이 나죠. 김윤상 대검찰청 감찰 1과장의 글을 대하면서 느끼는 소감입니다.
그는 사직을 할지언정 자리를 탐하여 부끄러운 짓은 하지 않겠다고 결심한 듯합니다. 자리에 미련을 두지 않고 옹호해 줄 사람이 있다는 것은 쌍방이 모두 행복한 일일 것입니다. 성공한 삶이라 할 수 있지요. 김윤상은 채동욱의 호위무사를 자처하면서 자리에 대한 미련을 떨쳐 버립니다.
채동욱이 대체 뭐길래?
검찰총장 채동욱, 그는 인사청문회 때부터 남다른 면을 보여 주었습니다. 여야를 막론하고 칭찬을 받은 유일한 후보였지요. 파면 팔수록 비리는 안 나오고 미담만 나온 희귀한 경우였습니다.
“인사청문회가 아니라 ‘칭찬회’ 같다”(민주통합당 박지원 의원)
“보좌진들에게 (의혹을) 파라고 했는데 ‘파면 팔수록 미담만 나온다’고 하더라”(민주통합당 박범계 의원)
“채 후보자가 자료 제출 시한을 넘기지 않은 점, 청문회 준비팀이 노력해준 점에 대해 칭찬의 말씀을 드린다”(박영선 법사위원장)
“검찰 출신 인사나 일반 국민들로부터 채 후보자가 ‘정말 꼭 필요한 사람’이라는 문자 메시지가 많이 왔다”(새누리당 정갑윤 의원)
“공직 후보자 단골메뉴인 병역기피, 위장전입, 탈세 등 의혹이 하나도 없던데, 총장이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자기 관리를 해왔느냐”(새누리당 노철래 의원)
그런 채동욱이 검찰총장에서 쫒겨날 위기에 처했습니다. 이 시점에서, 그가 어떤 행보를 보여 왔는지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채동욱 검찰총장은 취임 후 5개월간 공정한 수사와 검찰개혁에 매진했습니다. 박근혜 정권의 정통성을 위협할 수 있는 국정원 불법 선거 개입 사건을 수사하면서 원세훈, 김용판에게 '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습니다. 결국 그들의 범죄는 '18대 대선'으로 확장되었죠. 황교안 법무부 장관의 입김이 작용했지만 굽히지 않고 밀고 나갔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떳떳하다면 조사 철저히 잘 하라고 격려해 주어야 할 판입니다. 그런데 혼외자식이 있다는 의혹 하나로 그를 흔들어 대고 있지요. 여기에 반발하여 검찰 제 1과장이 사임하고 평검사들까지 성명을 내고 반대해 나서고 있습니다. 청와대도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일일 것입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모처럼 사람 냄새를 맡아 봅니다. 첫째, 채동욱은 황교안 장관의 감찰지시가 내려온 지 1시간 만에 사의를 표했습니다. 자기 한 사람 때문에 검찰 전체가 바람을 타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죠. 둘째, 김윤상 과장이 자리에 미련을 두지 않고 채총장을 옹호하고 나섭니다. 셋째, 평검사들이 이에 감동하여 의리를 지키겠다고 나서고 있습니다. 이 모두가 보기 드물게 아름다운 장면입니다.
이런 이례적인 움직임은 채총장의 인사청문회와 자연스럽게 연결되며 그의 인품을 가늠하게 해 줍니다. 파면 팔수록 미담만 나오는 사람, 그를 보좌하는 인물의 헌신적인 태도, 조직 말단에 이르기까지 자신들의 수장을 옹호하는 의리.
출세를 위해서는 배신도 마다하지 않는 현대의 조직 사회, 더욱이 비리와 불의가 득세하는 비정한 이 시대에 이런 장면을 보는 것만으로도 숨통이 트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가슴이 아려 옵니다. 과연 끝까지 버텨낼 수 있을까 하는 염려에서입니다. 검찰까지 완전히 장악당하면 민주주의는 더욱 멀어지고, 사람 냄새 맡기는 더욱 힘들어질 것이며, 민주주의를 바라는 사람들은 더욱 험난한 길로 내몰릴 것이기에...
이제 김윤상의 사람 냄새 나는 글을 음미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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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직하려는 이유 / 김윤상(대검찰청 감찰 1과장)
또 한번 경솔한 결정을 하려 한다. 타고난 조급한 성격에 어리석음과 미숙함까지 더해져 매번 경솔하지만 신중과 진중을 강조해 온 선배들이 화려한 수사 속에 사실은 개인의 영달을 추구하는 것을 여러 번 보아온 기억이 많아 경솔하지만 창피하지는 않다.
억지로 들릴 수는 있으나, 나에게는 경솔할 수 밖에 없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법무부가 대검 감찰본부를 제쳐두고 검사를 감찰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경우다. 그래서 상당 기간의 의견 조율이 선행되고 이 과정에서 마찰이 빚어지기도 한다. 그런데 나는 검찰의 총수에 대한 감찰 착수사실을 언론을 통해서 알았다. 이는 함량미달인 내가 감찰1과장을 맡다보니 법무부에서 이렇게 중차대한 사안을 협의할 파트너로는 생각하지 않은 결과이다. 고의는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내 본연의 고유업무에 관하여 총장을 전혀 보필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책임을 지는게 맞다.
둘째, 본인은 소신을 관철하기 위해 직을 걸어놓고서 정작 후배의 소신을 지켜주기 위해 직을 걸 용기는 없었던 못난 장관(황교안 법무장관을 지창하는 것이죠-옮긴이 주)과 그나마 마음은 착했던 그를 악마의 길로 유인한 모사꾼들에게, 총장의 엄호하에 내부의 적을 단호히 척결해 온 선혈낭자한 내 행적노트를 넘겨주고 자리를 애원할 수는 없다. 차라리 전설속의 영웅 채동욱의 호위무사였다는 사실을 긍지로 삼고 살아가는게 낫다.
셋째, 아들딸이 커서 역사시간에 2013년 초가을에 훌륭한 검찰총장이 모함을 당하고 억울하게 물러났다고 배웠는데 그때 아빠 혹시 대검에 근무하지 않았냐고 물어볼 때 대답하기 위해서이다. ‘아빠가 그때 능력이 부족하고 머리가 우둔해서 총장님을 제대로 보필하지 못했단다. 그래서 훌훌 털고 나왓으니까 이쁘게 봐주’라고 해야 인간적으로 나마 아이들이 나를 이해할 것 같다.
셋째, 아들딸이 커서 역사시간에 2013년 초가을에 훌륭한 검찰총장이 모함을 당하고 억울하게 물러났다고 배웠는데 그때 아빠 혹시 대검에 근무하지 않았냐고 물어볼 때 대답하기 위해서이다. ‘아빠가 그때 능력이 부족하고 머리가 우둔해서 총장님을 제대로 보필하지 못했단다. 그래서 훌훌 털고 나왓으니까 이쁘게 봐주’라고 해야 인간적으로 나마 아이들이 나를 이해할 것 같다.
학도병의 선혈과 민주시민의 희생으로 지켜 온 자랑스런 나의 조국 대한민국이 권력의 음산한 공포속에 짓눌려서는 안된다.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내 아들딸이 ‘Enemy of State‘의 윌 스미스처럼 살게 내버려 두어서는 안된다.
모든 것은 분명해졌다. ‘하늘은 무너져도 정의를 세워라’는 경구를 캠퍼스에서 보고 다녔다면 자유와 인권, 그리고 정의를 위해 자신의 몸과 마음을 바쳐야 한다. 어떠한 시련과 고통이 오더라도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위한 절대가치는 한치도 양보해서는 안된다.
미련은 없다. 후회도 없을 것이다. 밝고 희망찬 미래를 만들기 위해 난 고개를 들고 당당히 걸어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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