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외무상의 유엔 방문에서 보이는 중대 변화

북한과 미국 사이에 중대 변화가 감지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북과 미 사이의 변화를 주시해야 하는 이유는 국내 상황에도 큰 파장을 불러오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통일 문제와도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북-미 사이에 찬바람이 불면 우리도 더불어 춥고 햇볕이 비치면 더불어 훈훈해집니다. 김대중 노무현 시대에는 훈풍이 불었고, 이명박 이후에는 찬바람이 불었습니다. 

조심스럽게 지켜보건대, 이제부터 서서히 또는 급격히 훈훈해지기 시작할 듯합니다. 그 조짐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몇 가지 눈에 띄는 점들을 짚어 봅니다.

1) 미국의 고위 당국자들이 지난 8월 16일 비밀리에 평양을 방문했습니다. ( 관련 기사 : 미 고위 당국자, 한·미 을지연습 직전 평양 극비 방문 )그 시기가 미묘하죠. 을지프리덤가디언 훈련이 시작되기 이틀 전입니다. 미국은 급할 때는 이렇게 고위 당국자들이 직접 평양으로 들어갑니다. 북-미 사이에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그 이후 일어나는 일을 보고 짐작할 수밖에 없지요.

2) 을지프리덤가디언 훈련이 전례 없이 조용히 지나갔고 일정도 단축되었습니다. 항공모함이나 전략폭격기가 동원됐다는 소식도 들려오지 않았습니다. 미 당국자들의 평양 방문과 연결하여 판단할 때 북-미 사이에 이미 물밑 작업이 있었던 것으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3) 북에서는 아시안게임에 선수단을 파견하겠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습니다. 비록 응원단 파견은 취소했지만 선수단은 오게 될 듯합니다. 선수단 파견 의지는 한미 훈련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변함이 없었습니다. 북은 미국과 대화를 트면서 남한과는 평화 공세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4) 리수용 외무상이 뉴욕에서 열리는 유엔총회에 파견될 것이라 합니다. 15년 만의 일이죠. 외무성이 나선다는 것은 대화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됐다는 의미입니다. 북은 미국과 대화가 안 될 때는 국방위원회가 나서고, 대화가 된다 싶으면 외무성이 나섭니다. 국방위원회가 나설 때는 살벌하죠. 미국더러 날강도라고 하고, 본토를 타격하겠다고 을러댑니다. 그러다가 분위기가 조성되면 외무성이 나서서 대화를 이어갑니다.

5) 노동당 국제비서 강석주는 6일경부터 유럽을 방문한다고 합니다. ( 관련 기사 : 강석주 유럽行, 이수용 뉴욕行… 北, 고립탈피 외교전 ) 강석주는 1994년 북-미 제네바합의를 이끌어낸 협상의 주역입니다. 

국내 언론에서는 북의 이러한 움직임을 폄하하기에 바쁘지만 전문가들은 예의주시하고 있습니다. 위 사실들을 종합해 보건대 북-미 사이에 중요한 변화가 시작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북의 외무상이 유엔을 방문한 것은 15년 전인 1999년인데 당시 북-미 사이에 대화와 화해의 바람이 훈훈하게 불었죠. 그 이듬해에는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하여 최초의 남북정상회담이 이루졌습니다. 조명록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이 김정일의 특사로 미국을 방문(2000. 10. 9~12.)하고, 그 답례로 당시 국무장관이던 매들린 올브라이트가 평양을 방문(2000. 10. 23~25)했죠. 

올브라이트가 김정일과 나란히 앉아 카드섹션을 관람하던 중 미사일 발사 장면이 연출되자 김정일은 "공화국에서 쏘아올리는 마지막 미싸일입네다." 이케 말했다고 합니다. 북-미 사이의 화해무드를 대변하는 일화죠. 이와 같은 무드가 계속됐다면 세계사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을 것입니다. 물론 한반도는 통일의 급물살을 타게 됐을 것이고요. 불행히도 그 해 12월에 조지 W. 부시가 미국 대통령이 되면서 훈훈했던 바람은 싸늘하게 식어 버렸습니다. 

작금 수면 위로 드러나는 위과 같은 현상들은 예사롭지 않습니다. 북은 이미 핵 보유국이 됐고 미국은 본토가 공격받을 위기에 처해 있으니 함부로 적대시할 수도 없습니다. 미국의 마지막 선택은 '전략적 인내' 즉 참고 기다린다는 전략인데 이제 그것도 종지부를 찍을 때가 되었습니다. 전쟁이냐, 대화냐의 두 가지 갈림길에서 다행히도 대화의 길로 접어든 것 같습니다. 

북-미 사이에 대화의 바람이 불고 한반도에 평화가 깃들기를 기원하며...

(2014. 9. 4. 새벽 01:20, 지창영 씀)

Posted by PoetT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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