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최고사령관의 죽음
2011년 12월 19일 오전. 기사를 작성하고 있던 나는 무심코 커피 잔으로 손을 뻗다가 곧바로 그 옆에 있는 수화기를 들었다. 때마침 벨이 울린 것이다.
“한기자님, 잠시 와 보실래요?”
극동평화연구소 양권미 소장이다. 극동평화연구소는 우리 신문사에서 부설로 운영하는 연구소다. 세평일보에서 나만큼 그 연구소를 자주 드나드는 기자도 없다. 그러다 보니 양권미 소장과도 꽤 친하게 되었다.
“지금 기사 작성중인데. 그러지 말고, 가만 있자, 지금 11시 50분이니까 조금 있다가 아예 점심을 같이 먹는 게 어때요?”
“점심은 나중에 하고요, 정오가 되기 전에 오셔야 할 것 같아요.”
“아, 그래요. 그럼 지금 갈께요.”
나는 구체적으로 묻지 않고 무조건 일어섰다. 양소장이 그렇게 말한다면 뭔가 나에게 흥미로운 내용이 있다는 얘기다. 더구나 정오가 되기 전이라는 단서까지 붙었으니 그 시간에 뭔가 있을 것이라는 점을 기대할 수 있다. 자동차 가속기를 밟을 때 계기판의 바늘이 올라가듯 궁금증이 치솟았다. 복도를 달려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 연구소에 내려가기까지 채 1분도 안 걸린다.
양권미 소장은 인터네트로 중계되는 조선중앙티비를 켜 놓고 소파에 앉아 있었다.
“야, 이거 여기는 완전히 해방구야. 빨갱이 소굴이라니까.”
나의 농담에 양소장은 씩 웃으면서 손짓으로 옆자리를 권했다. 나는 궁금증을 지그시 누르며 짐짓 여유 넘치는 투로 물었다.
“무슨 재미 있는 일이라도 있어요?”
“아직은 뭔지 모르겠어요. 윗동네에서 오늘 정오에 중대발표가 있다고 몇 차례나 예고하고 있어요. 한기자님 생각이 나서 연락 드렸죠.”
소파에 기대고 있던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윗몸을 천천히 일으켜 세웠다. 깍지를 끼고 뒷목으로 넘겼던 두 손도 스르르 풀려 양 무릎으로 옮겨 갔다.
“아니, 그걸 왜 이제……”
“트위터하고 인터넷에도 이미 알려졌던데 못 보셨어요?”
아침부터 기사 작성하는 데 집중하다 보니 이 중요한 소식을 놓친 것이다. 중대발표라. 도대체 뭘까? 일촉즉발의 이 시점에서 중대발표라면 드디어 뭔가 터진다는 것인가? 머리 속에서는 온갖 상상이 회오리바람을 타고 솟아올랐다. 정오가 되기까지 몇 분 안 되는 시간이 그렇게 길 수가 없었다. 내 머리 속에서는 몇 편의 드라마가 제멋대로 펼쳐졌다.
미국과 북한이 평화협정을 체결하기로 했다는 발표일까? 그렇다면 반세기 넘는 북미 대결이 그 누구의 희생도 없이 평화적으로 마무리되는 일이 아닌가. 세계는 경악하면서 반길 것이다. 특히 미국의 압제에 짓눌려온 나라들은 환호성을 울릴 것이다.
아니, 작금 돌아가는 현실을 보면 평화협정이 그리 쉽게 체결될 분위기가 아니다. 그렇다면 북조선에서 뭔가 공세를 취하는 조치를 발표하겠다는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이번에는 세계가 보는 앞에서 미국이 망신을 당하는 일이 될 것이다. 항공모함 조지워싱턴 호를 수장시키기라도 할 셈인가? 아니면 미국과 합의한 그간의 비밀회의 내용을 공개하기라도 하겠다는 것일까? 그렇다면 북미 정상회담과 평화협정 일정이 밝혀지면서 누가 약속을 미루고 있는지 백일하에 드러나게 된다. 그렇게 되면 미국이 과연 어떻게 나올까? 순순히 약속을 이행할 것인가, 아니면 모든 약속을 접고 대결로 치달을 것인가?
그러나 정작 정오가 되어 조선중앙티비 화면에 비친 모습은 뜻밖이었다. 검은색 상복을 입은 리춘희 아나운서가 퉁퉁 부은 눈으로 나타나는 게 아닌가. 아나운서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전체 당원들과 인민군 장병들과 인민들에게 고함. 우리의 전체 당원들과 인민군 장병들과 인민들,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와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내각은 조선로동당 총비서이시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위원장이시며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이신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 동지께서 주체 100, 2011년 12월 17일 8시 30분에 현지지도의 길에서 급병으로 서거하시었다는 것을 가장 비통한 심정으로 알린다.>
이게 무슨 소린가. 우리 워 헌터스 멤버 중 그 누구도 이런 예측은 한 적이 없었다. 뒤통수를 얻어맞은 느낌이다.
<주체혁명 위업의 계승 완성을 위하여 한평생을 바쳐 오시었으며 사회주의 조국의 강성번영과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나라의 통일과 세계의 자주화를 위하여 불철주야 정력적으로 활동하시던 우리의 위대한 김정일 동지께서 너무도 갑자기, 너무도 애석하게 우리 곁을 떠나시었다. 사회주의 강성국가 건설 위업 수행에서 전환적 국면이 열리고 있으며 우리 혁명이 중첩되는 난관과 시련을 뚫고 승승장구하고 있는 력사적인 시기에 우리 당과 우리 인민의 위대한 령도자이신 김정일 동지께서 뜻밖에 서거하신 것은 우리 당과 혁명에 있어서 최대의 손실이며 우리 인민과 온 겨레의 가장 큰 슬픔이다.>
금방 울음이 터질 듯하면서도 비장하게 천천히 발표하는 내용을 들으며 머리 속은 더욱 복잡해졌다. 그렇다면 미국은 이제 어떻게 나올 것인가? 아니, 오늘이 19일이니 이틀 전에 사망했다는 얘긴데 미국에서는 까맣게 몰랐단 말인가? 김정일은 북조선 인민군의 최고사령관이다. 그가 설령 사망했다 하더라도 저렇게 발표해도 되는 것인가, 이 중대한 시기에? 아무래도 믿기지 않는 현실이다.
혹시 저것이 고도의 심리전은 아닐까? 김정일의 사망은 연극이 아닐까? 그렇다면 무언가 커다란 일이 막후에서 벌어지고 있을 텐데……. 지금 이 시각 고폭 탄두를 장착한 미사일이 미국 근해의 무인도를 향해 날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참으로 중대한 시기에 이런 발표를 접하다 보니 별스러운 생각이 다 들었다.
지금이 어느 시긴가. 북조선에서 볼 때는 지금 아나운서가 말한 대로 ‘전환적 국면이 열리고 있으며…혁명이 중첩되는 난관과 시련을 뚫고 승승장구하고 있는 력사적인 시기’가 아닌가. 그런데 바로 이 시점에서, 2012년이 보름도 안 남은 시점에서 최고사령관이 사망했다?
<혁명의 성산 백두산에서 빨찌산의 아들로 탄생하시여 위대한 혁명가로 성장하신 김정일 동지께서는 장구한 기간 우리 당과 군대와 인민을 현명하게 령도하시어 조국과 인민, 시대와 력사 앞에 영구불멸할 혁명업적을 쌓아올리시었다.>
빨치산 김일성에서 김정일로 이어지는 혁명 2대. 북조선에서는 올해를 주체 100년으로 말한다. 김일성이 탄생한 지 100년. 그렇게 본다면 북조선의 역사는 한 세기에 걸쳐 계속되는 혁명의 역사다. 김일성도 혁명가요, 그 아들 김정일도 혁명가다. ‘백두산에서 빨찌산의 아들로 탄생’하여 ‘혁명가로 성장’했다는 표현에 이러한 사실이 함축되어 있다.
‘장구한 기간 우리 당과 군대와 인민을 현명하게 령도하시어 조국과 인민, 시대와 력사 앞에 영구불멸할 혁명업적을 쌓아올’렸다는 표현에도 그간의 역사가 녹아 있다. 1970년대에 후계자로 지명되어 몇 가지 굵직한 사건들을 처리하는 데 있어 북조선에서는 탁월한 영도력을 발휘했다고 인정되는 것이다. 소련이 붕괴되고 중국이 흔들리던 1990년대에 사회주의를 굳건히 사수하고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미국과의 대결에서 꿀리지 않고 큰소리 치고 있는 현실이 그 대표적인 결과로 꼽힌다.
사회주의권에서 기댈 수 있는 두 거목이던 소련과 중국이 제 코가 석 자 신세가 되어 주저앉아 등을 돌렸을 때, 북조선은 지구상에 어느 한 곳 의지할 데가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기근마저 들어 수많은 인민들이 굶어 죽는 비참한 현실을 감내해야 했다. 그것을 북조선에서는 ‘고난의 행군’ 시기라고 한다.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라는 구호는 당시의 눈물겨운 현실을 이겨내는 정신력의 표현이었다.
지옥문을 통과하여 이제 미국을 쥐락펴락하면서 협상을 몰아붙이고 있으니 그 중심에 핵무기가 있다. 역경을 거쳐 더욱 공고해진 북조선의 체제를 급기야 러시아와 중국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보이지 않는 가운데 사회주의권의 맹주로 거듭난 것이다. 이를 두고 북조선에서는 ‘현명하게 령도’한 것으로 표현하는 것이고 ‘영구불멸할 혁명업적’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 김정일이 사망한 것이다.
<정치의 대가이시며 천출명장이신 김정일 동지께서는 세계 사회주의 체계의 붕괴와 민족 최대의 국상, 제국주의 련합 세력의 악랄한 반공화국 압살 공세와 혹심한 자연재해 속에서 선군정치로 어버이 수령님의 고귀한 유산인 사회주의 전취물을 영예롭게 수호하시었으며 우리 조국을 일심단결된 불패의 정치사상 강국으로, 그 어떤 원쑤도 감히 건드릴 수 없는 핵보유국, 무적의 군사강국으로 전변시키시었다.>
참으로 묘한 것이 사람의 머리다. 예전에는 간혹 북조선의 방송을 들어도 모두 귓전에 스쳐 지나가는 말들에 불과했다. 그들이 늘 하는 얘기요, 다 똑같은 얘기의 반복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지금은 신기하게도 아나운서의 한 마디 한 마디에 실린 의미의 무게가 느껴진다. 배석달을 만나게 되고 제3차 세계대전에 관심을 갖게 되고 워 헌터스를 하나 둘 알게 된 후 달라진 현상이다. 서방 언론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독자적으로 상황을 분석하는 자세가 그래서 중요하다.
리춘희 아나운서는 평소 카랑카랑하고 힘찬 목소리로 소식을 전하곤 했다. 원고를 읽다가 문장의 말미에 고개를 들면서 자신감에 찬 미소를 자주 보여 주곤 했다. 68세라고 하니 확실한 할머니인데도 현역으로 활동중이다. 일설에 의하면 김정일이 그녀의 음성을 높이 평가했다고 한다. 메시지가 인민들의 심중에 파고들어 전달되는 힘이 있다 하여 좋아했다고 한다.
17년 전 김일성의 사망을 중대 발표로 전한 아나운서도 리춘희였다. 오늘은 그의 아들이자 후계자인 김정일의 사망을 발표하고 있다. 천천히 읽어 나가는 문장마다 비장미가 어려 있고, 무거운 슬픔이 깃들어 있다. 전체 인민의 슬픔을 모두 담은 듯 낮으면서도 울림이 깊은 음성이다. 넉넉한 풍채에 검은 상복이 중대발표의 무게를 더해 준다.
<민족의 어버이이시며 조국통일의 구성이신 김정일 동지께서는 위대한 수령님의 조국 통일 유훈을 실현하실 철석의 의지를 지니시고 온 겨레를 자주와 민족대단결의 길로 이끌어 오시었으며 우리 민족끼리의 숭고한 리념이 실현되는 6·15통일시대를 열어 놓으시었다.>
김대중 대통령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과 상봉하는 김정일의 모습이 떠오른다. 감격의 순간들이었다. 비무장지대의 지뢰를 철거하고 끊어졌던 철길을 다시 이으며 남북의 기업과 노동자들이 함께 공단을 차렸다. 이산가족이 서로 만나고 꿈에 그리던 금강산을 관광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김정일은 남한에서도 인기가 급상승하여 오빠로 불리기까지 했다. 그 세월이 지금까지 연장됐더라면 통일의 길은 탄탄대로로 굳어졌을 것이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 동지께서는 장구한 혁명령도의 전기간 인민을 제일로 아끼고 사랑하시며 언제나 인민들과 고락을 함께 하시었으며 강성국가 건설과 인민생활 향상을 위하여 불면불휴의 로고와 심혈을 바치시며 초강도의 현지지도 강행군길을 이어가시다가 겹쌓인 정신 육체적 과로로 하여 렬차에서 순직하시었다.>
불현듯 H의 분석이 떠올랐다. 2008년 8월에도 김정일은 의식을 잃고 쓰러진 적이 있었다. H의 분석에 따르면 그 당시 북조선과 미국은 한판 대결이냐 평화적 화해냐를 가름하는 결단의 날을 앞두고 있었다고 한다. 이란과 시리아 등 중동의 국가들이 암암리에 미국과 일전을 준비해 놓은 상태였고 북조선도 만반의 준비를 끝낸 상태였다.
그런데 결단의 날을 불과 10여 일 앞두고 최고사령관 김정일이 쓰러진 것이었다. 북조선은 물론 중동 전선에도 온갖 신경을 써야 할 처지에서 과로로 인하여 건강에 이상이 생겼을 것으로 H는 추측했다. 그의 분석과 추측이 사실이라면 그 날의 상황과 오늘 이 상황은 매우 유사한 것이다.
2008년 당시 미국에서는 김정일의 유고를 즉시 파악하지 못했다. 현지지도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는 것을 보고 뭔가 이상이 있는 것 같다는 심증만 가지고 있었다. 2008년 9월 9일, 북조선 건국 60주년 행사에 김정일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자 미국 정보부와 한국 정보 당국은 북조선에 뭔가 이상이 있다는 의심을 더욱 굳히게 됐던 것이다.
김정일에게 이상이 생기자 막후에서 뒷수습을 하면서 미국과의 대결전을 지휘한 인물이 김정은임을 H는 일찍부터 주장해 왔다. H의 분석은 정확했다. 최근 후계 구도를 공식화하는 과정에서 밝혀지는 사실들이 그가 옳았음을 입증해 주었다. 그렇다면 북조선의 오늘의 위기는 당연히 김정은의 손에 전적으로 달리게 된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 동지께서는 그처럼 바라시던 강성국가 건설 위업의 승리와 조국통일, 주체혁명위업의 완성을 보시지 못하고 애석하게도 서거하시었으나 우리 혁명이 대를 이어 줄기차게 전진해 나갈 수 있는 강력한 정치 군사적 지반을 다져 놓으시고 우리 조국과 민족 만대의 무궁 번영을 위한 튼튼한 토대를 마련하여 주시었다. 오늘 우리 혁명의 진두에는 주체혁명위업의 위대한 계승자이시며 우리 당과 군대와 인민의 탁월한 령도자이신 김정은 동지께서 서 계신다.>
29세(만 28세)의 김정은은 이제 확실한 후계자로서 모든 일을 감당하고 결정해야 한다. 북조선 인민들은 그를 새로운 영도자로 모시고 따를 것이다.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가 남긴 말이 생각난다. “개인은 죽어도 집단은 영생한다.” 주체사상 이론가로서 남한으로 망명하여 2010년 10월에 사망한 그의 말이 오늘따라 의미심장하게 느껴진다. 북조선에 딱 맞는 말이다. 김일성은 갔어도 그의 유훈통치는 계속된다. 김정일이 세상을 떠나도 주체혁명은 계승된다. 언제까지? 완성을 볼 때까지다.
한 사람의 노력도 10년이면 대개 결실을 본다. 북조선은 60년 넘게 한결같이 추체혁명을 이어 왔다.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을 하나의 목표를 바라보며 준비해 왔다는 점에서 지구상에서 견줄 만한 나라가 없다. 결국은 미국도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우리는 조국통일3대헌장과 북남공동선언을 철저히 리행하여 온 민족의 단합된 힘으로 조국의 자주적 통일을 기어이 실현할 것이다. 우리 당과 인민은 자주, 평화, 친선의 리념에 기초하여 세계 여러 나라 인민들과의 친선단결을 강화하며 지배와 예속, 침략과 전쟁이 없는 자주적이며 평화로운 새 세계를 건설하기 위하여 적극 투쟁할 것이다. 우리 혁명의 길은 간고하고 조성된 정세는 준엄하지만, 위대한 김정은 동지의 현명한 령도 따라 나아가는 우리 당과 군대와 인민의 혁명적 진군을 가로막을 힘은 이 세상에 없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 동지의 심장은 비록 고동을 멈추었으나 경애하는 장군님의 거룩한 존함과 자애로운 영상은 우리 군대와 인민의 마음속에 영원히 간직되어 있을 것이며 장군님의 성스러운 혁명실록과 불멸의 혁명업적은 조국청사에 길이 빛날 것이다.>
리춘희 아나운서는 격한 감정을 가까스로 억누르며 발표를 마무리했다.
“급변사태 아니에요?”
여자의 목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나는 양소장의 존재를 다시 인식했다. 숨을 죽인 채 눈과 귀를 온통 화면에 모으고 있던 터라서 잠시 시공에 대한 감각이 없었던 것이다. 양소장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대답을 기다리듯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급변사태, 양소장과 대화할 때 자주 언급됐던 어휘 중 하나다. 미국은 북조선의 급변사태를 계기로 북을 공격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워 헌터스 사이에 기본 상식으로 통한다. 양소장은 워 헌터스 멤버가 아니지만 북한 관련 자료를 취급하는 일을 하다 보니 그런 얘기를 자주 나누게 된 것이다. 그녀는 평소 나의 의견에 흥미는 보였지만 그다지 동의하는 기색은 아닌 것으로 보였다.
“급변사태라……, 글쎄 분명히 급변은 급변인데…….”
말을 하면서도 나는 선뜻 그렇다고 하지는 못했다. 원래 급변사태는 이집트처럼 북조선 내부에 소요사태가 일어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써 온 어휘였다. 사실 사태로 보면 이런 급변은 없다. 그런데 웬지 모르게 실감이 안 난다. 급변 치고는 너무 차분하다.
17일 사망, 19일 발표. 이틀 간의 시차를 두고 발표했다는 점을 생각해 볼 때 모종의 안정감마저 풍기는 것이다. 만일 급변사태를 계기로 미국이 공격할 것이 두려웠다면 북조선은 김정일의 사망 사실을 최대한 숨기고 나중에야 발표하게 될 것이다. 사망을 가장한 모종의 심리전이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드는 까닭이다. 사망이 사실이라면 급변사태를 기다려 온 미국에 대하여 모종의 조치를 완벽하게 해 두고 발표를 한다는 의미다. 도대체 어느 쪽일까? 사망이 사실일까, 아니면 고도의 심리전일까? 사망이 사실이라면 미국은 어떻게 나올 것이며, 북조선은 이에 대해 어떤 조치를 생각하고 있을까?
(2012년 1월 9일 오후 11시 50분 탈고, 다음 편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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