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인의 아해가 도로로 질주하오.

(길은 막다른 골목길이 적당하오.)

1의 아해가 무섭다고 그리오.

2의 아해가 무섭다고 그리오.

3의 아해가 무섭다고 그리오.

4의 아해가 무섭다고 그리오.

5의 아해가 무섭다고 그리오.

6의 아해가 무섭다고 그리오.

7의 아해가 무섭다고 그리오.

8의 아해가 무섭다고 그리오.

9의 아해가 무섭다고 그리오.

10의 아해가 무섭다고 그리오.

11의 아해가 무섭다고 그리오.

12의 아해가 무섭다고 그리오.

13의 아해가 무섭다고 그리오.

13인의 아해는 무서운 아해와 무서워하는 아해와 그렇게 뿐이 모였소.

(다른 사정은 없는 것이 차라리 나았소)

그중에 1인의 아해가 무서운 아해라도 좋소.

그중에 2인의 아해가 무서운 아해라도 좋소.

그중에 2인의 아해가 무서워 하는 아해라도 좋소.

그중에 1인의 아해가 무서워 하는 아해라도 좋소.

(길은 뚫린 골목이라도 적당하오.)

13인의 아해가 도로로 질주하지 아니 하여도 좋소.


이상의 시 <오감도> 1호가 생각나는 요즘입니다. 마치 공포영화의 한 장면처럼 아이들이 도로로 질주하면서 무섭다고 합니다. 첫 번째 아이부터 열 세 번째 아이까지 차례로 무섭다고 그럽니다.


왜 무서운지 이유는 나와 있지 않습니다
. 처음에는 막다른 골목길이 적당하다고 장면 설정을 해 놓았는데 나중에는 뚫린 골목이라도 적당하다고 말을 바꾸어 버립니다. 막혀 있으나 뚫려 있으나 무서운 것은 마찬가지라는 얘깁니다. 바꾸어 말하면 뚫려 있어도 막다른 길이나 마찬가지로 무섭다는 얘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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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의 아이 중에는 무서운 아이도 있고 무서워하는 아이도 있습니다. 무서운 아이가 몇 명이고 무서워하는 이가 몇 명인지는 상관 없습니다. 다만 무서운 아이도 있고 무서워하는 아이도 있다는 것이 중요하죠.


누구나 아는 것처럼 이상은 일제 강점기에 이 시를 썼습니다
. 막다른 길이나 뚫린 길이나 모두 무서운 세상이었죠. 사람과 사람 사이도 무서움이 지배하는 공포의 시절이었습니다.


국정원 직원의 죽음 소식을 접하게 되면서 갑자기 이 시가 생각났습니다
. 무섭다는 생각이 엄습했습니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가 322일에는 역시 국정원의 권모 과장이 자살을 시도했다가 가까스로 목숨을 건지기도 했습니다. 도대체 국정원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요?


부정선거에 깊이 개입한 국정원
, 멀쩡한 사람 데려다가 간첩 만들려고 하다가 들통나서 망신당한 국정원. 이들이 하는 일을 보면 국정원은 공포의 대상입니다. 무서운 아이들입니다. 그런데 그들 사이에서 자살 시도가 일어나고 죽음이 발생합니다.


자살을 기도했던 권모 과장은 서울시 공무원 간첩 증거 조작에 관여했던 사람입니다
. 그 사람은 살아남았는데 기억상실증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그를 대상으로 조사를 할 수 없습니다. 이번에 국정원 직원이 죽은 사건은 해킹 프로그램을 동원한 전국민 사찰 의혹이 불거진 시점에서 일어난 것입니다.


무서운 대상인 국정원 아이들이 죽음으로 막아야 할 그 무엇은 과연 무엇일까요
? 그것이 더 공포스러운 것입니다. 그들이 숨기려고 하는 것, 문제가 불거지면 죽음으로 막으려고 하는 것이 있다는 자체가 무서운 것입니다. 진실이 밝혀지는 것을 막기 위하여 또 누가 죽어야 한단 말입니까?


이상이
<오감도>를 통하여 보여 주었던 공포가 바로 오늘 우리에게 엄습하는 것 같습니다. 까마귀의 눈으로 저 하늘에서 바라본 우리 세상은 어떨까요? 공포에 싸여 골목길을 달려가는 13인의 아이들, 그 중에 나 또한 섞여 있는 듯하여 모골이 송연합니다.


 

뭉크의 <절규>

Posted by PoetT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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