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대선 판도를 가늠할 수 있는 고급 자료를 발췌해서 올립니다. 한국 대선 때마다 영향을 미쳐 온 미국의 개입이 이전에는 어떤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내용이죠. 한국의 역대 대통령 선거에서 미국의 의도대로 되지 않은 것은 노무현 때가 유일하다고 합니다. 


제18대 대선에서 미국의 의중은 어디에 있을까요. 요약해서 말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미국은 박근혜를 지지하지 않는다. 
   1) 박근혜는 미국을 거역하고 핵개발을 추진한 박정희의 친딸이기 때문이다. 
   2)  박근혜를 지지하고 있는 수구세력은 핵무장론으로 박근혜 정권을 압박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2. 북한과의 대결에서 패한 미국은 북한과 대화를 원하고 있다. 
   1)  
북한과의 대화가 필요한 미국으로서는 남북 대결을 부추기는 박근혜가 탐탁치 않다.
   2)  대화가 가능한 후보는 문재인이다.


북한을 붕괴시키지 못하고 결국 대화의 장으로 끌려나온 미국으로서는 자기들이 필요로 하는 인물이 대선에서 승리하기를 바랄 것입니다. 

그럼 한호석 소장님의 글을 발췌합니다. 
 이 내용은 어디까지나 참고로 할 만한 것이고요, 우리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우리 시각으로 판단해야 하겠죠.  

---------------------------------------------------------------

독재자의 딸에 대한 백악관의 불편한 시선
[한호석의 개벽예감](41) 한국 대선에서 미국의 의중은?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기사입력: 2012/12/15 [00:34]  최종편집: ⓒ 자주민보
 
백악관이 거역자로 기억하는 한 사람이 있다
 
1970년대에 폭압만행과 부정부패의 대명사로 전 세계에 악명 높았던 독재자 세 사람이 있었다. 칠레의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Augusto Pinochet, 1915-2006), 필리핀의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Ferdinand Marcos, 1917-1989), 그리고 일제 식민통치기에 일왕 히로히도에게 충성혈서를 쓴 다카키 마사오라는 일본 이름을 가진 박정희(1917-1979)다. 
 
피노체트는 1998년 10월 17일 신병치료를 위해 영국 런던을 방문하던 중 인권유린죄로 전격 체포되어 가택연금을 당했고, 미국의 비호로 2000년 3월 3일에 간신히 귀국한 뒤에도 복잡한 재판절차를 거쳐야 했는데, 2006년 11월 28일 또 다시 가택연금형에 처해지자마자 12월 10일 자연사하였다. 마르코스는 1986년 2월 필리핀 민중의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폭발하자 미국이 하와이로 피신시켜 망명생활을 하던 중 1989년 9월 28일 하와이에서 자연사하였다. 
 
그런데 박정희는 1979년 10월 26일 여성 연예인들이 술시중을 드는 비밀주연에서 양주잔을 기울이다가 자기 부하 김재규가 쏜 총탄에 비명횡사하였다. 이것을 10.26 사태라 한다. 자연사로 생을 마감한 다른 두 독재자와 달리 박정희는 술자리에서 자기 부하가 쏜 총탄을 맞고 비명횡사하였다.
 
독재자 박정희의 비명횡사에 깔려있는 배경과 원인은 무엇일까? 세상에 알려진 대로, 박정희는 미국을 거역하고 핵개발을 고집하다가 결국 피살된 것이다. 그에 얽힌 과거사 내막을 정리하면 대충 이렇다. 
 
(중략) 박정희는 이미 1970년 중반에 핵개발을 결심하였고, 1972년 초에 대통령 비서실장 김정렴과 당시 경제수석이었던 자신을 집무실로 불러 핵개발을 지시하였다고 한다. 
 
(중략) 7년 동안 미국의 감시를 요리조리 피하면서 핵개발을 추진한 끝에 10.26 사태 직전에는 핵물질 생산기술을 확보하였다고 한다. 그러자 박정희는 비서실장 김정렴, 경제수석 오원철, 국방장관 서종철, 국방과학원(ADD) 책임자를 집무실로 불러, 핵물질을 무기화하라고 지시하였다. (중략)
 
박정희가 개발하려고 하였던 핵무기는 제국주의무력침공으로부터 조국과 민족을 지키는 정의의 무기가 아니라 동족인 북에 대한 핵공격으로 민족의 존립 자체를 파괴하려는 간악한 범죄의도를 품은 반민족적인 무기였다. 그런데도 박정희의 반민족적인 핵개발을 엉뚱하게 민족주의적 시각에서 바라보려는 것은 민족주의를 배반한 가짜 민족주의자의 궤변이다.  
 
(중략) 1979년에 미국은 박정희의 핵개발을 설득과 압박으로는 저지할 수 없음을 깨닫고, 결국 그를 제거하기로 하였다. 
 
(중략) 박정희는 미국을 거역한 독재자, 그래서 미국이 제거할 수밖에 없었던 거역자로 백악관의 기억 속에 영원히 남아있는 것이다. 
 
두 여성 정치인을 바라보는 미국의 대조적인 시선
 
2012년 제18대 대선에 집권당 후보로 출마한 박근혜 후보를 바라보는 백악관의 심기는 불편하다. 왜냐하면, 박근혜 후보는 미국이 33년 전에 ‘거역죄’로 제거한 기형적 독재자 박정희의 친딸이기 때문이다. 
 
(중략)
 
세계적인 보급망을 가진 미국의 유력한 시사주간지 <타임>이 2012년 12월 7일 아시아판 최신호 인터넷 기사에서 박근혜 후보를 표지인물로 등장시키고 특집기사를 실었다. 그런데 매우 흥미로운 것은, 그녀를 ‘권력자의 딸(Strongman's Daughter)’이라고 지칭한 좀 이상한 표제를 달아놓았다는 점이다. 미국인들이 ‘권력자’라는 말을 들으면, 거칠고 난폭한 통치자(harsh ruler)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권력자라는 말에는 독재자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자기 당의 대선후보가 <타임>의 표지인물로 등장하였다고 좋아하던 박근혜 후보 선거본부는 표제를 읽어보고 그만 기겁하였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그들은 표제를 ‘강력한 지도자의 딸’이라고 아전인수격으로 번역한 보도자료를 황급히 취재진에게 내돌리며 부산을 떨었는데, ‘권력자의 딸’이라는 표제에 관해 논란이 일어나자 <타임>지 편집국은 특집기사 제목을 아예 ‘독재자의 딸(Dictator's Daughter)’로 바꿔놓았다. 이것은 박근혜 후보 선거본부의 고의적인 오역을 비판한 것이다. 
 
지금 아시아에서 친미성향의 여성 정치인으로 미국의 사랑과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미얀마의 아웅산 수치(Aung San Suu Kyi)도 1947년 7월 19일 당시 미얀마 총리가 보낸 테러단의 총격으로 비명횡사한 미얀마 건국영웅 아웅산(Aung San, 1915-1947)의 딸이다. 그런데 2011년 1월 10일 <타임>은 아웅산 수치를 표지인물로 등장시키면서, ‘투사(Fighter)’라는 표제를 달고, 그 밑에 “버마의 아웅산 수치는 자유 없는 나라를 비추는 자유의 횃불”이라는 찬사를 늘어놓았다.  
 
그런데 그와 달리, <타임>은 이번에 박근혜 후보를 표지인물로 등장시켜 ‘권력자의 딸’이라는 표제를 달고, 그 밑에 “박근혜는 한국의 첫 여성 대통령으로 역사에 등장하려고 하지만, 그녀의 아버지가 남긴, 물의를 일으키는 과거를 넘어설 수 있을까?”라고 써넣었다. 그 물음은 박근혜 후보가 박정희의 과거를 넘어서지 못할 것임을 암시하는 문구로 읽힌다.
 
아웅산 수치에게 ‘자유의 투사’라는 미국식 칭찬을 보낸 <타임>이 박근혜 후보에게는 ‘독재자의 딸’이라는 미국식 비난을 보낸 것은 너무 대조적이다. 박근혜와 아웅산 수치를 각각 바라보는 미국의 시선이 그처럼 대조적으로 될 수밖에 없는 까닭은, 미국을 거역한 박정희에 대한 미국의 쓰디쓴 기억이 박근혜 후보에게 투영되기 때문이다. 
 
(중략)
 
대선을 불과 며칠 앞둔 지금, 얼마 전까지 ‘박근혜 대세론’으로 표현되어오던 박근혜 후보의 지지율 상승세가 문득 걸음을 멈추고, 그 대신 문재인 후보 지지율이 상승세를 타기 시작한 막판 추격전은, 박근혜 후보를 바라보는 미국의 불편한 시선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문재인의 맹렬한 막판 추격전은 미국의 대선개입공작이 선거일 직전에 어느 쪽으로 쏠리고 있는지를 짐작하게 만든다. 
 
남, 북, 미 삼각관계에 복잡하게 얽힌 사연
 
(중략) "지난 2007년 대통령선거 당시에는 정동영 후보가 한미동맹에 대한 회의론을 제기했고, 2002년 선거 때는 노무현 후보가 반미주장을 내놨지만, 지금은 그런 후보가 없다. 한미동맹은 이번 선거에서 주된 문제가 아니다”(중략)
 
(중략)

얼마 전 미국 연방하원 차기 외교위원장으로 선임된 에드 로이스(Ed Royce)는 북이 위성발사에 성공하였다는 소식이 전해진 2012년 12월 12일에 발표한 성명에서 오바마 정부의 대북정책이 “오랫동안 실패하였다”고 지적하면서 “상상력이 부족하고 무기력한 것”이었다고 비판하였다. 
 
(중략) 2012년 12월 10일 <연합뉴스> 특파원과 대담한 조엘 위트(Joel Witt) 전 미국 국무부 대북담당관의 발언을 들어볼 필요가 있다. 위트는 대담에서 오바마 정부의 대북정책이 “실패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지적하고, 북미 대결에서 “실제로 북한이 이겼다”고 논평하였다. 
 
(중략)
 
위의 대담에서 조엘 위트는, 제18대 대선 이후에 등장할 남측 대통령이 워싱턴을 방문해서 오바마 대통령을 만나면, 미국은 그 기회에 이미 실패한 대북정책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하고, “북한과의 대화를 원하는 한국의 새 대통령은 우리에게(오바마 정부에게라는 뜻 - 옮긴이) 그런 기회를 줄 수 있다”는 뼈있는 말을 남겼다. 
 
(중략) 백악관의 분위기는, 제18대 대선에서 북과 대화할 수 있는 후보가 당선되기를 바라고, 북이 대화상대로 여기는 후보가 당선되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중략) 백악관이 2013년 이후 자기의 대북정책에서 선호하게 될 후보는 북과 대화할 수 있고, 북이 대화상대로 여기는 문재인 후보다. 새누리당과 박근혜 후보는 이명박 정부가 임기 5년 내내 그러했던 것처럼 ‘북한 붕괴설’과 ‘북한 정권교체설’을 미신처럼 믿으며 극도로 반북적대감을 드러내왔다. 그에 대응하여, 북도 이명박 대통령은 물론 새누리당과 박근혜 후보에 대해서도 적대감을 보이며 맹비난을 퍼부어 왔다. 박근혜 후보는 대선을 의식해서 말조심을 하지만 마음속에서는 북을 대화상대로 여기지 않고 있으며, 북도 그런 박근혜 후보를 대화상대로 여기지 않는다. 
 
백악관과 박정희 사이에서 정면충돌을 일으켰던 핵문제는 33년 전 10.26 사태로 끝난 게 결코 아니며, 오늘 박근혜의 대선출마로 다시 살아났다. 2000년 1월과 2월에 고농축우라늄 실험에 성공하여 무기급 핵물질을 만들었던 핵개발 능력이 남측에 여전히 남아있는 한, 미국은 한미 원자력협정의 고삐를 더욱 세게 틀어쥐고 남측의 핵활동을 계속 감시할 것이며, 핵개발을 비밀리에 추진했던 박정희의 과거사를 절대로 잊지 않을 것이다. 특히 지난 20년 북미대결사를 되돌아보면, 백악관이 북의 초강경 대미압박에 정치적으로 굴복할 수밖에 없었던 패배국면들마다 백악관은 청와대를 따돌리고 북에게 ‘양보’를 하였고, 백악관의 그런 정치적 굴복을 바라보면서 심한 배신감을 느낀 이 땅의 수구세력은 박정희가 이루지 못한 핵개발을 재개해야 한다는 식의 핵무장론을 꺼내들었다. 
 
2013년 이후 백악관이 청와대를 따돌리고 북에게 ‘양보’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이 되는 경우 백악관의 ‘대북양보’에 심한 배신감을 느낀 박근혜 정권은 박정희가 이루지 못한 핵개발을 재개하려는 수구세력의 강한 요구를 받게 될 것으로 예견된다. 백악관이 박근혜의 대선출마와 관련하여 심히 우려하는 것은, 바로 그런 상황이 2013년 이후에 조성될 수 있는 가능성이다. 
 
그들은 백악관의 의중을 알아차렸을까?
 
(중략)
 
33년 전 과거사를 완전히 망각하였을 뿐 아니라, 지금 북미관계를 중심으로 격변의 급류를 타고 있는 한반도 정세를 파악하기에는 정치적 지능지수가 한참 떨어지는 수구파 소굴 새누리당은, 자기들의 대선후보를 잘 못 뽑아놓은 치명적 실수를 저지르고도 그것을 아직도 깨닫지 못할 만큼 너무 우매하다.
 
제18대 대선에 대한 백악관의 의중을 알아차리고 그러했는지는 알 수 없어도, 그 동안 대선후보 지지문제에 대해 침묵하던 이수성, 정운찬, 문국현, 박주선은 물론이고, 새누리당 핵심부에 자주 얼굴을 내밀던 윤여준, 김덕룡, 김현철까지 줄줄이 문재인 후보에 대한 지지의사를 밝히고 있다. 이러한 이상한 상황전개는, 안철수가 열어놓은 문이 더 활짝 열리고 있는 느낌을 안겨준다. 제18대 대선 선거일이 바로 코앞에 다가왔다.(2012년 12월 14일)

Posted by PoetTow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