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가 종북으로 돌아서나?
 
저는 요즘 보수 언론을 사찰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보수 신문인 조선일보가 주요 타겟이죠. 오늘(2013. 3. 9.) 사설을 보고 미소를 머금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공감의 미소였는데 이내 씁쓸한 미소로 이어졌습니다. 공감하는 내용을 발견했기에 흐뭇했죠. 그러나 이내 씁쓸해지면서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1) 이미 늦었다, 이것들아. 2) 과거에 너희가 한 일부터 반성해라.
 
사설은 요즘 멘붕 상태에 빠져드는 친미반북 세력들의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눈에 띄는 내용을 정리해 봅니다.
 
1. 제목을 '급소 못 누른 유엔 대북 제재 이후의 한반도'라고 했습니다. 유엔의 대북 제재가 신통치 않다는 것을 아는 것이죠. 다시 말해서 별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점을 이들도 인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후 한반도는 어떻게 될 것이냐 하는 점을 나름대로 짚어본 것이 이 사설의 후반부에 나와 있습니다. 어떻게 정리하고 있는지 아래에서 살펴봅니다.
 
2. '한반도를 둘러싸고 제재·대치·대화가 교차하는 지금의 분위기는 북핵 사태가 경우에 따라선 급커브를 틀 수도 있다는 느낌을 주고 있다.' 라고 표현했습니다. 이는 사실상 대화로 급선회해야 한다는 희망을 내포한 말입니다. 이어지는 두 문장을 보면 바로 나오죠. '북핵 문제는 긴장 고조 후에 급작스럽게 대화 국면이 찾아온 전례가 많다.'
 
아시다시피 사설은 특정 사안에 대한 해당 언론사의 방향을 반영하는 글입니다. 여기서 대화로 '급커브를 틀 수도 있다는 느낌'을 말한다는 것은 이 언론사가 사실상 '대화로 급커브'를 틀 것을 예견하거나 희망한다는 의미입니다.
 
조선일보가 갑자기 착해진 것일까요? 대화를 그렇게 흠집내고 퍼주기라고 비난하던 이들이 왜 이러는 것일까요? 달리 길이 없다는 것을 이들도 알고 있으니 그러는 것입니다. 유엔 제재는 효과가 없을 것이고, 그렇다고 미국이 나서서 북한 붕괴시켜 줄 수 없음을 알게 된 것이죠. 그렇다면 남은 길은 하나, 대화입니다. 조선일보가 애초부터 일관되게 이런 주장을 해 왔더라면 애국신문이죠. 그러나 이제껏 해 왔던 짓을 지울 수는 없는 일입니다.
 
대화를 주장할 때 종북타령을 했던 이들, 6.15와 10.4 선언을 퍼주기라고 난도질하고 대결 분위기를 부추겨 왔던 이들이 왜 이제 와서 대화에 희망을 거는 것일까요? 자기들이 살 길을 찾아 보겠다는 발버둥입니다. 미국을 믿고 북한 붕괴의 단꿈을 꾸며 대결 분위기를 신나게 조장했는데 정신을 차려 보니 큰일 난 것입니다. 일촉즉발의 전쟁 분위기는 무르익었는데 미국은 슬슬 발 빼고 수습할 길은 없고... 그야말로 멘붕이죠.
 
3. "북한과 대화 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며 "평화협정, 경제·에너지 지원, 외교 관계 수립 등을 포함하는 광범위한 문제에 대해 논의하는 것이 더 생산적일 것"이라는 보즈워스의 말을 인용하면서 평화협정을 거론합니다.
 
사설에 설명되어 있듯이 '평화협정은 북이 한·미 동맹 종료와 주한미군 철수를 노리고 끊임없이 요구해온 사안'입니다. 이어지는 문구를 잘 살펴보시죠. '(6자회담) 전직 대표의 입에서 '평화협정'이 또 언급된 것이다.' 라고 했습니다. 놀라움이 묻어나는 표현이죠. 종북주의자도 아닌 미국측 6자회담 대표였던 사람이 그런 말을 한다는 것이 내심 충격인 것이죠.
 
이쯤 되면 친미반북대결주의자들은 미국에 대해 배신감을 느낄 것입니다. '이제까지 누굴 믿고 나팔 불었는데 ㅆㅂ 이제 와서...'
 
4. 사설은 말미에 이르러 '한반도를 둘러싼 전략적인 풍향도 민감하게 파악하고 대처해야 할 시점'이라고 정리합니다. 앞에서 언급한 내용을 종합하여 볼 때 이는 대결보다는 대화 쪽으로 흐르는 분위기도 잘 파악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왜 이들은 '대화가 살 길이다' '대화의 길로 돌아서라'고 화끈하게 말하지 못하고 이렇게 은근슬쩍 돌려서 말하는지 대부분 아실 것입니다. 과거에 자기들이 한 말과 방향이 다른 말을 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죠. '평화협정 체결하자'고 하면 종북이라고 몰아붙이던 분위기에서 자기들이 '평화협정' 고려하자고 말할 수 없으니 그러는 것입니다. 6.15 선언과 10.4 선언에 답이 있다고 말할 염치가 없는 것입니다. 남북 화해와 협력 반대했던 거 잘못했다고 반성할 용기가 없는 것입니다.
 
그나저나, 대화로 해결하고 '평화협정'을 체결하자는 것은, 이 사설에서 앞서 밝힌 대로 북한이 요구해 온 사안인데 이걸 용인한다면 조선일보도 종북의 대열에 합류하는 것인가요?
 
* 조선일보를 언론사로 대접하는 것이 불쾌하신 분들도 계시겠으나 멘붕 상태에 빠진 이들을 위해 베푸는 최소한의 대접이니 양해 바랍니다.
 

 

 

Posted by PoetT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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