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전쟁이냐 평화냐
2013년 1월 1일 이른 아침. 국립현충원에서 여의도로 이어지는 도로 위를 검은 색 차량 행렬이 달리고 있었다. 차량이 제법 흐름을 형성하고 있는 반대편 차선과 달리 여의도 방향 차선은 텅 빈 상태였다. 차량들은 한강변의 찬 공기를 뚫고 거침없이 달렸다. 차량 행렬 중 승합차 한 대에는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가 타고 있었다. 국립현충원에서 이승만, 박정희, 김대중 전 대통령 묘소를 참배하고 당사로 향하는 길이었다.
현직 대통령과 여당의 실정에 적잖이 분노하고 있었던 선거 직전까지의 분위기로 보아 박근혜의 당선은 많은 사람들에게 뜻밖의 일이었다. 특히 야당과 진보 진영은 일대 공황 상태에 빠졌다. 지난 12월 19일 오후 6시, 텔레비전 화면을 지켜보던 나도 초조하기는 했지만 내심 꽤 느긋했다. 이미 이긴 싸움이고 얼마나 많은 차이로 승리하느냐만 남았다고 생각하던 터였다.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되자마자 나는 눈을 의심했다. 환호성은 통합민주당이 아닌 새누리당 당사에서 터져 나왔다. 개표 후반에 역전되지 않겠는가 하는 기대는 부질없는 것이었다. 최종 결과는 51.6% 대 48%로 문재인 후보의 패배였다.
내가 아는 시민단체 회원들 중 투표율을 높이기 위해 투표 독려 운동에 매진했던 이들은 충격이 어느 때보다 클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 일주일 전후로 공황 상태라 할 만큼 실의와 낙담에 빠져 있었다. 투표율이 높아지면 야당 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 일반적인 분위기였는데, 더욱이 이번에는 야권이 분열되지 않고 단일 후보로 싸운 만큼 승리는 거의 확정적이라고 보았는데 결과는 예상 밖이었던 것이다.
전쟁의 기운을 맨 먼저 감지해 온 국내와 해외의 워 헌터스 회원들도 선거 직후 갈팡질팡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한 발 멀어지는 것 아닌가 하는 일말의 기대에 먹구름이 끼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워 헌터스는 어느 누구보다도 먼저 정세를 정리해 나갔다. 큰 그림을 다시 펼치고 각자 정보와 의견들을 내 보이며 앞으로 있을 수 있는 일들을 예견해 보기 시작했다. 한반도 남쪽의 일은 종속변수일 뿐이라는 것은 변함이 없었다. 주도권은 북조선과 미국이 가지고 있다는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2011년 말, 북조선은 최고사령관의 사망이라는 최대의 위기와 슬픔을 딛고 그의 아들 김정은을 중심으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들이 말하는 ‘혁명’을 이어가고 있다. 지도자를 잃은 북조선 인민들의 회한과 결의는 백이면 백 모두가 한결같았다. 오열하는 인파 속의 한 사람에게 마이크를 들이대면 그들의 말은 대동소이했다. “저희 인민을 위하여 그토록 희생하시다가 겹싸인 피로도 풀지 못하고 돌아가시기까지 저희는 그런 것도 모르고 그저 장군님이 오시면 좋아하고 오시기만을 기다리기만 했으니 이를 어쩌면 좋습니까. 그러나 우리에게는 젊고 기백 넘치는 김정은 대장님이 계시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장군님이 염원하시던 강성대국을 일떠세울 때까지 대장님을 따라 한 치의 드팀도 없이 전진할 것입니다.” 이들의 인터뷰는 천편일률적으로 두 가지 핵심을 담고 있었다. 요컨대, 장군님이 돌아가셔서 한없이 슬프지만 새로운 대장님을 모시고 전진하겠다는 것이었다.
말 그대로였다. 북조선은 인민들이 한결같이 말한 대로 한 치의 드팀도 없이 가던 길을 가고 있었다. 김정은의 정치적 입지가 나약하다느니, 군부의 반발이 있을 것이라느니 하는 세간의 말들은 몇 개월도 지나지 않아 무색해졌다. 언론에 흔히 등장하는 소위 북한 전문가들은 대부분 엉터리 분석들을 내놓곤 했다. 김일성 주석이 사망한 1994년도에는 더욱 심했다. 마치 금방이라도 북한이 붕괴될 것처럼 너도나도 의견들을 내놓았다. 그들의 분석은 정확한 사실과 분석을 바탕으로 했다기보다는 그렇게 됐으면 하는 바람이 투영된 것들에 가까웠다.
김정일 최고사령관의 죽음이 발표된 것은 공교롭게도 12월 19일이었다. 그로부터 정확히 1년 만에 남쪽에서는 박근혜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것이다. 북조선과 미국의 대결 사이에 낀 남한이 아무리 종속변수라 해도 대통령과 국민의 의지에 따라서 중대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 누가 대통령에 당선되느냐에 따라 한반도의 운명이 갈릴 수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는 워 헌터스는 단순히 진보와 민주주의 이상의 가치를 두고 이번 대선 결과를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가 바라보는 시각은 바로 전쟁이냐 평화냐 하는 것이었다.
이명박 정부의 정책은 결국 연평도 포격을 불러왔다. 남한 땅에 북조선의 포탄이 떨어진 것은 종전 후 처음 있는 일이었기에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더욱 충격적인 점을 대다수 사람들은 간과하고 있다. 세계의 패권국가라 일컫는 미국에서 이 일에 대하여 속수무책이라는 점이다. 다음 정권에서 대결 정책이 계속된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연평도를 때렸던 포탄이 청와대로 날아들고 남한 내 미군기지와 주요 군사 시설을 타격한다면 과연 미국이 나설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이르면 문제가 심각해지는 것을 대부분 간과한다.
워 헌터스는 세 가지 시나리오를 예상하고 있다. 첫째, 미국은 평화협정으로 북조선과 오랜 대결을 마감한다. 둘째, 미국은 빠지고 남한 군부를 앞세워 전쟁을 수행한다. 소위 대리전이다. 셋째, 일본을 비롯한 동맹국을 앞세워 전쟁을 수행한다. 이 경우 복잡한 양상을 띤 세계대전으로 비화될 수 있다.
평화협정으로 귀결되는 첫 번째 시나리오는 북조선과 미국의 잦은 물밑 접촉을 고려할 때 가능성이 꽤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미국 내 핵심 실세들의 내부 의견 충돌이 감지되고 있어 가닥이 쉽게 잡히지 않을 수도 있어 보인다.
두 번째 시나리오대로 대리전을 감행할 경우 한반도에 어떤 참화가 발생할지 누구도 알 수 없다. 그러나 대리전이라고 해서 미국 본토가 무사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북조선은 미국 본토를 가장 먼저 타격할 준비를 마친 것으로 파악된다.
세 번째 시나리오인 세계대전은 중동과 아시아를 중심으로 그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다. 중동에서는 이란이 핵 개발을 맹렬하게 진행하고 군사적인 무장을 강화하고 있는 가운데 팔레스타인이 2012년 11월에 유엔에서 국가 지위를 얻었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그만큼 위축되고 있다. 중국과 일본 사이의 영토 분쟁도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될 수 있다. 그 모든 것들이 톱니바퀴처럼 물려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웬만큼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알 수 있을 지경이다.
워 헌터스에게는 박근혜 당선 이후 북조선의 반응이 초미의 관심사였다. 이명박 정부 5년을 경험한 북조선이다. 더구나 29세의 젊은 지도자가 새로 부상하여 최전선을 시찰하는 등 심상치 않은 행보를 연속 보였다. 게다가 2012년은 강성대국의 문을 열어젖히는 해였고 그 해에 인공위성을 궤도에 안착시켰다. 남은 것은 통일이다. 모든 조건을 고려해 볼 때 북조선은 오래 기다리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 워 헌터스는 일치된 견해를 보이고 있었다. 예상대로였다. 2013년 1월 2일, 북조선 국방위원회 대변인이 담화를 발표했다. 연합뉴스만 봐도 주요 내용은 알 수 있었다.
<보수와 대결에 체질화된 반역의 무리들은 그대로 살아 숨 쉬지 못하게 만들어야 한다.…오늘 북남관계는 지난 5년처럼 또다시 대결과 전쟁이냐, 아니면 대화와 평화냐 하는 엄숙한 기로에 놓여 있다.…남조선 당국은 책임적인 선택을 해야 할 것이다.…전쟁도, 평화도 아닌 정전상태를 완전히 종식시켜버리자는 것이 우리의 변함 없는 입장이다.…통일된 강성국가를 기어이 일떠세우기 위하여서는 크고 작은 그 모든 전쟁도발행위를 민족의 단합된 힘으로 단호히 짓부셔버려야 할 것이다.…나라의 분열을 종식시키고 통일을 이룩하는 데서 나서는 중요한 문제는 북과 남 사이의 대결상태를 해소하는 것이다.…모든 호전세력들은 우리가 이미 내외에 성전을 포고한 상태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우리 혁명무력은 존엄 높은 최고사령부가 이미 최종비준한 작전계획들을 받아 안은 상태이다.>
가만히 정세를 음미하려 하는 찰라 전화벨이 울렸다. “세평일보 한세기입니다.” 나는 “여보세요.” 대신 이렇게 전화를 받는다. 기자 생활 초기부터 밴 오랜 습성이다. “형, 저에요.” 풀 죽은 목소리지만 누군지는 알 수 있었다. “어, 황보성, 아직도 자리보전하고 있어?” 그는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는 후배인데 대선 패배의 충격으로 며칠째 소위 멘붕 상태에 빠져 있었다. 정권교체의 확신에 차서 투표독려 운동에 앞장섰던 그였다. 아까보다 조금은 힘을 낸 목소리로 그가 말했다. “헤, 지금은 괜찮아요. 마침 근처에 왔다가 형 생각이 나서요.” “그럼 얼굴 한번 봐야지. 지난 번 만났던 용사의 집 커피숍에서 보자.”
용산역 근처에 있는 ‘용사의 집’은 조용해서 좋다. 용산역 상가에도 음식점이며 커피숍이 몇몇 있지만 대체로 시끄러운 분위기라서 나는 주로 용사의 집을 이용한다. 큰 길을 건너려고 신호를 기다릴 때마다 남일당이 있던 곳을 물끄러미 바라보곤 한다. 지금은 헐린 상태로 새로 공사가 시작되지는 않았다. 건물은 헐렸어도 불길 속에 절규하던 철거민들의 영상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살려고 올라갔다가 주검이 되어 내려온 사람들의 장례식은 355일 만에 치러졌다. 2010년 1월 9일,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4천여 명의 시민들이 서울역에서 열린 영결식에 참여하여 마음의 열기를 함께 나누었다.
황보성과는 주로 대선 이후 치유가 필요하다는 내용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앞으로 5년을 어떻게 지낼 것인가 하는 것을 주제로 많은 이야기가 있어야 할 것 같았다. 적당한 틈을 타서 나는 “보다 큰 틀에서 달리 할 일을 찾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넌지시 말을 건넸다. 그러자 황보성이 “형은 무슨 생각이 있어요?” 하면서 마시던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음, 이제 통일 문제를 부각시켜야 하는 거 아냐? 언제까지 남북이 대결할 거냐? 지금은 전쟁이 염려되는 지경이다. 빨리 화해하고 통일을 향해 나가야 하지 않겠느냐? 남북한 평화가 곧 경제다. 뭐 이런 거 말이지.” 듣고 있던 황보성은 조금은 실망이라는 듯이, “아이, 그게 뭐 어제 오늘 얘기도 아니고, 또 우리가 그런다고 해서 지금껏 귀 기울인 적이나 있나요 뭐.”
나는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대개 이런 반응이라는 것을 익히 알고 있는 데다가 내가 보는 관점을 적극적으로 피력하는 데 나는 익숙치 않아서이기도 하다. 동료 기자 중에 상대방 무릎을 툭툭 치면서 자기 말을 적극적으로 주입시키는 사람이 있는데 때로는 그가 부럽기도 하지만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역시 내 성격에 더 만족한다. 말은 많이 하는 것보다 아끼는 것이 효과적이다.
나는 좀 전에 읽은 기사 내용이 생각나서 “야, 박근혜 당선자가 아무래도 남북 관계에서 시험대에 오르지 않겠냐?” 하면서 말을 이었다. “아이, 형. 박근, 아이 그 이름은 당분간 안 들었으면 좋겠어요.” 그래 놓고도 연장자에게 너무 무례했나 싶었던지 금방 말을 이었다. “왜, 무슨 조짐이 보여요?” 나는 이 때다 싶어서 국방위원회 대변인 담화 내용을 요약해 주면서 이제 남한 쪽에서 대결이냐 평화냐를 선택해야 할 입장 아니냐고 마무리했다. 역시 반응은 시원치 않았다. “걔네들 늘 하는 소리 아녜요, 형.”
하긴 전체적인 흐름을 모르는 상태에서 보면 늘 하는 소리 같고 늘 같은 상태처럼 보인다. 나 또한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랬으니까. 배석달을 만나고 워 헌터스를 알기 전까지는 나에게도 모든 것이 그저 예전처럼 흘러가는 것들이었으니까. 배석달이 던져 준 말이 머리 속에 다시 떠올랐다. <자, 하늘에 별들이 있지. 그거 하나하나는 아무 의미가 없어. 그냥 점이여. 그걸 선으로 이어 놓아야 북두칠성도 되고 카시오페아도 되고 전갈도 되고 독수리도 되는겨. 안 그러냐, 이 ㅆㅣㅂㅅㅐ야?>
황보성과 헤어져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조금은 외로운 생각이 들었다. 진보적인 생각을 가지고 열심히 사회 참여를 하는 사람들은 많아도 지금의 정세를 꿰뚫어 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뒤집어 생각해 보기도 했다. ‘아냐, 내가 잘못 보고 있는지도 몰라. 대다수 사람들이 생각하고 바라보는 것이 맞을지도 몰라. 나는 몇 안 되는 사람들과 함께 확증편집증에 사로잡혀 내가 옳고 남은 그르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이렇게 곰곰이 생각해 보는 것이 처음은 아니다. 그러나 결론은 언제나 같았다. 워 헌터스가 아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있다.
차기 대통령은 모르긴 해도 민족 최대의 과제를 부여안게 된 것이다. 다른 정책 다 실패해도 북한과의 문제만 잘 풀어 가면 그것 하나만으로도 커다란 업적이 될 수 있는 시점이다. 반대로 이 문제에 잘못 접근하면 그 결과는 돌이킬 수 없는 과오가 될 수도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박근혜 당선자는 북한과의 화해에 있어서 유리한 고지에 서 있다. 그는 수구세력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다. 그가 북한과 대화를 선택한다면 그들도 무조건 지지하고 나설 것이다. 반대하고 나설 세력이 없다는 얘기다. 더구나 그는 2002년도에 북한을 방문하여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난 적이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일컬어 ‘대화가 통하는 지도자’라는 평가를 하기도 했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지지도 90%를 넘어섰던 김영삼 정부 초기 시절이 생각났다. 군부 내 사조직인 하나회를 해체하고 금융실명제를 실시하는 등 강도 높은 개혁정책으로 한때 인기가 대단했다. 김대중이 당선됐다 해도 저렇게까지는 못 했을 것이라는 평가였다. 특히 ‘어떠한 우방도 민족보다 우선할 수 없다’는 선언은 통일운동을 추진해 온 대학생들의 마음을 얻기에 충분했다. 한총련 의장이 대중집회에서 “김영삼 정부가 현재와 같은 개혁정책을 유지한다면 우리 한총련도 적극 지지하고 도와줄 용의가 있습니다.” 라고 연설하던 현장은 감동의 물결이었다.
2013년 취임하는 새 대통령이 과연 어느 길을 택할 것인지 아직 알 수 없다. 이명박 정부 5년간의 정책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6.15와 10.4 선언 이행의 길로 나아간다면 화해와 통일은 급물살을 탈 수 있을 것이다. 과연 그럴 수 있을 것인가?
(2013년 1월 21일 오전 00시 30분 탈고, 다음 편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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